[창] 배달라이더 노동의 품격

국민일보

[창] 배달라이더 노동의 품격

신준섭 경제부 기자

입력 2022-05-14 04:08

요즘 들어 갓 두 돌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앞을 산책하다 화들짝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굉음을 내는 오토바이가 유모차 옆을 휙휙 스쳐 지나가는 상황과 종종 마주한다. 분명히 여기는 사람이 다니는 보행자 전용 도로인데 분류상 ‘이륜차’인 오토바이가 사람과 함께 다닌다. 이러다가 아이가 치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오토바이도 ‘차’인 만큼 사고가 나면 연약한 아이들은 크게 다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아이를 가진 게 죄인 것도 아닌데, 아이와 산책하는 부모들은 이렇게 걱정을 달고 산다.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이 늘어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이후 부쩍 인도를 차도처럼 활보하는 오토바이가 늘었다. 우리가 배달라이더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차도를 선호한다. 하지만 인도나 파란 불이 들어온 횡단보도에서 목격되는 일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의 안전은 가볍게 위협받는다.

플랫폼 일자리의 대명사가 된 배달라이더의 덩치가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누구나 일을 할 수 있고 일 한 만큼 돈을 받는 플랫폼 일자리라는 새로운 직업의 등장은 고용시장 지형도를 바꿨다. 배달라이더도 그중 하나다. 특히 배달라이더의 경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자 일자리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배달업 종사자 수는 42만8000명에 달한다. 전년 대비로는 9.7%, 2년 전인 2019년 대비로는 22.2%나 늘었다.

전체 숫자가 증가했다고 해서 인도를 침범하는 배달라이더도 늘었다고 보는 것은 비약이기는 하다. 그보다는 플랫폼 일자리의 ‘생업화’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달라이더를 ‘투잡’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전업 일자리로 활용하는 이들이 늘면서 속도 경쟁이 붙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해야 수익이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라면 도로 위의 위험한 운전도, 인도를 침범하는 일도 자체적으로 용인해버린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해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달해줬으면 하는 인식은 이들의 폭주에 불을 붙이는 요소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아무리 수요와 공급 간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해도 인도를 달리며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특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 사고도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륜차 사고 건수는 2019년 1만8785건에서 2020년 2만1285건, 지난해에는 2만598건을 기록했다. 코로나 이후 2년 연속 2만건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배달라이더로 분류될지는 경계가 모호하다. 대신 이들 사고 중 일부는 분명히 시민 피해로 이어졌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힘들 듯하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인도 주행 방지 등 보다 강력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행 안전장치는 앞서 언급한 ‘이해관계’ 때문에 잘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정부는 생활물류법 제정을 통해 지난달부터 플랫폼 사업자가 배달라이더에게 안전 교육, 보호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에서는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이륜차 주행 교육 등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도에서 마주하는 배달라이더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륜차 대부분이 속도 및 신호 위반 카메라에서 자유로운 점도 고쳐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대부분 오토바이는 뒷면에 번호판이 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전면 번호판과 사륜차를 상정한 카메라 감시망은 무력한 게 사실이다. 이 빈틈은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외줄 타기와 같은 운전을 방지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소한 이런 장치들이 구비돼야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는 배달라이더들의 외침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국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권리만 요구하는 것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국토교통부에서 배달료를 더 달라는 취지인 안전배달료 도입이 힘들다고 보는 이유도 ‘과연 도입한다고 안전할까’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권리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도 그만큼 중요하다. 스스로 안전을 담보하는 ‘배달라이더 노동의 품격’이 갖춰져야 사회도 배달라이더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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