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고요하고 소란스러운 수상 소감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고요하고 소란스러운 수상 소감

천주희 문화연구자

입력 2022-05-13 04:05

얼마 전 제58회 백상예술대상이 열렸다. 배우들의 시상식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조현철 배우의 수상 소감이 인상 깊어서 여러 번 찾아보았다. 조현철 배우는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에서 조석봉 역을 연기해 TV 부문 남자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무대에서 함께 작품을 만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기 위해 남은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말했다.

차분하고 덤덤하게 그는 아버지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죽은 할머니가 꽃이 돼 아버지 곁에 있을 거라는 말과 아버지가 젊은 날 함께했던 환경운동가 박길래, 노동자 김용균, 군인 변희수, 세월호의 아이들, 이경택의 이름을 불렀다. 이들은 모두 사회구조적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다음으로 불린 이름들 또한 배우가 살아가면서 만났을 이들이자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왜 동료들의 축하와 인정을 받는 시상식에서 아버지에게 죽음의 이름들을 꺼냈을까. 그는 왜 아버지에게 용기를 주겠다는 언어를 죽은 이들의 삶에서 찾았던 것일까. 숙연한 마음으로 그가 부르는 이름을 경청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아버지를 빌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말했듯이 죽음은 단지 존재 양식이 변하는 것이기에 그의 삶에서 호명된 죽음들은 여전히 꽃으로, 예술작품으로, 기억으로, 아버지로, 사랑하는 것들 속에 깊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수상 소감을 마치며 그가 한 말이 맴돌았다. “소란스러운 일 잘 정리하고 도로 금방 가겠습니다.” 마치 남은 이들의 몫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죽음이 자기 삶에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말하는 것만으로 ‘소란’ 취급하는 이 고요한 사회에서, 그가 일으킨 소란은 남겨질 존재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어느 존재에게 전할 수 있는 깊은 위로가 아니었을까.

천주희 문화연구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