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양심도 없는 공무원 알고리즘

국민일보

[이동훈 칼럼] 양심도 없는 공무원 알고리즘

입력 2022-05-18 04:20

전 세계 컴퓨터 알고리즘 숭배… 유튜브 페북, 증오 폐해 심각
미 긴축에 실체 없는 김치 코인 폭락으로 투자자들 투매 패닉
정권 바뀌자 급증한 추가 세수 태도 바꾼 공무원 양심 문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 반대 의견에 반박하면서 꺼내든 말이다.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면 나가기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뜻이었겠지만, 의식까지 지배한다는 표현엔 다소 과장이 섞여 있는 듯하다. 공간의 의식 지배 능력을 따진다면 4차산업이 대세인 요즘 분위기로 봐선 현실 공간보다는 사이버 공간이 압도적일 것이다. 정확히는 컴퓨터 알고리즘의 지배다.

인류가 알고리즘 위력에 역대급 충격을 받은 건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다. 컴퓨터가 참(1) 아니면 거짓(0) 등 2진법으로 작동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며 설마 하던 사람들은 딥러닝으로 무장한 알파고의 압승에 알고리즘 숭배의 늪에 빠져 버렸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이제 알고리즘의 전지전능 뒤에 가려진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목격한 것처럼 사용자의 성향에 따라 맞춤형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유튜브 등의 알고리즘은 확증편향에 따른 진영 대결을 심화시켰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증오를 부추긴다는 논란에 시달렸다.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가상화폐(암호화폐) 관련 알고리즘도 그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시가총액 7위에 올랐던 스테이블 코인 루나와 테라USD가 퇴출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낸스 등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를 비롯해 굴지의 벤처캐피털사들이 코인을 발행한 테라폼 랩스에 앞다퉈 투자했을 정도다. ‘1테라=1달러’로 가치를 고정해 그 밑으로 내려가면 루나를 소각하고, 1달러 위로 오르면 루나를 발행하도록 설계한 유통량 조절 알고리즘은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2진법에 충실하기에 한 치의 오차가 없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급등락이 심한 비트코인 등 기존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이런 마법의 알고리즘을 탑재한 ‘김치 코인’이 하루아침에 시가총액 57조원을 날려버린 원인은 뭘까. 테더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이 가치방어를 위해 현금이나 미국 재무부의 단기 국채에 의존하고 있다면 테라폼 랩스는 실체 없는 루나 코인으로 방어했다. 투자자들은 테라가 80~90센트로 내려가도 곧 1달러로 복구되는 모습을 보며 투자행렬에 가세했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이 빅스텝을 밟으며 긴축을 서두르자 멀쩡한 듯 보였던 알고리즘 작동이 멈추면서 패닉장세가 연출됐다. 실물 방어 장치가 없는 알고리즘은 유동성이 풍부할 때만 작동하는 반쪽짜리였던 셈이다. 테라폼 랩스는 투자자들에게 연 20%의 고금리를 주겠다며 탐욕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 수익은 뒤늦게 뛰어든 ‘호구’ 투자자들 주머니에서 나왔다. 위기가 터지자 탐욕은 패닉으로 변했다. 테라폼 랩스는 이를 몰랐을까, 알고도 방치한 것일까. 서울여대 김명주 교수가 ‘AI는 양심이 없다’며 외쳐온 경고가 비로소 실감 나는 대목이다.

알고리즘 맹신의 폐해는 4차산업에 그치지 않는 듯하다. 기획재정부가 소상공인 코로나 피해 보상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 재원으로 53조원의 추가 세수를 도출한 걸 보면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61조원의 추가 세수로 본예산 대비 오차율(21.7%)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19.6%)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역대 평균 4.5%를 훨씬 넘는 15.5%가 전망됐다. 불과 두 달 전 추가 세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말이 바뀐 것이다. 그들만의 알고리즘인 세수 추계 모형엔 별문제가 없는데 최근의 고환율 고물가 고유가 등이 발생하리라고 예측을 못 했다며 외부 환경이 더 문제라는 식이다.

더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정권 교체 후 기재부의 태도 돌변이다. 문재인정부 시절엔 보수적 세수 전망에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추경 편성에 난색을 보이더니 갑자기 불어난 세수 추계를 들고나와 자영업자 피해 보상을 다시 하겠다며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게다가 실현도 안 된 추가 세수에서 9조원을 떼어내 50%가 넘은 국내총생산(GDP) 규모 대비 국가채무를 49.6%로 줄이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의 마술 수준으로, 알고리즘 덕인지 사람 실력인 건지 헷갈린다. 정권 코드 따라 움직이는 ‘영혼 없는 공무원’ 딱지는 그간 역대 집권 세력의 단기 성과목표에 적응하느라 붙여진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양심까지 전 정부에 두고 왔다고 둘러대지 말기를 바란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