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짐승과 神 사이 인간의 소명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짐승과 神 사이 인간의 소명

정애주 홍성사 대표

입력 2022-05-20 04:02

2015년 간통죄라 하는 형법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았다. 법적 부부관계는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취지다. 여러 해 그 법의 위헌성을 들어오던 터라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우선 걱정이 앞섰다. 조강지처들의 험한 속 끓임이 더할 게 자명했다. 목숨을 다해 남편을 돕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어느 날, 젊은 날의 빛은 바래고 사지육체는 노화한 여인이 내 남자를 두고 매력적인 젊은 여성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싸움에서 원인 제공자인 남자는 자기 인생을 살고 싶어 취사선택한단다. 여성의 경우가 이렇다면 남성의 경우도 매한가지일 게다. 그러니 이젠 결혼 앞에 사람이 영악해진다. 약속의 관계가 계약의 관계로 전이된 셈이다. 결혼도 먹거리 전쟁과 흡사한 정글로 치닫는다.

얼마 전 주례 부탁을 받았다. 양가의 엄마를 대신해 덕담을 하리라 마음먹고서야 응할 수 있었다. 이 청청한 부부 꿈나무들에게 어떤 축복을 해야 할지 곰곰 심사숙고했다. 이 결혼 정글의 시대에 계약인지 약속인지를 서로 알지 못하면서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오래 살아 묵은 경험만 그득한 나는 더 많이 고민해야 했다. 혼인 약속이 유명무실한 세대에 그래도 결혼은 계약이 아니라 약속이어야 한다. 계약은 서로의 이해타산과 조건을 기초로 맺는 일이므로 문서로 증거를 남기고 경우의 수를 빼곡하게 적시하게 된다. 그와는 차원이 다른 약속은 때때로 하객도 증인도 없어도 저들의 인격을 담보로 신뢰를 뿌리로 반드시 지켜야 할 인생 최고의 중차대한 약속이어야 한다. 자네들의 머리카락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그러니 계약의 세대에 약속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분투의 연속이다. 그릇의 안쪽 면과 바깥 면이 있듯이 부부가 된 아내와 남편은 보이는 시야도 시각도 다르다. 그래서 그릇 속의 시각으로 우기거나 바깥 면의 시야로 우격다짐을 하게 되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견을 마주하고는 서로 절망한다. 결국 그릇은 깨지고 나서야 서로의 세계를 확인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 반드시 홀로의 싸움이 필요하다. 또 다른 싸움은 함께하기 위한 함께할 싸움이다.

부부는 사건 사고들을 함께 겪어내며 진정 운명 동지로 결혼을 완성해간다. 양가 개입, 자녀 출생 유무를 무론하고 주변인, 경제 활동, 무료함, 권태, 건강 등 수도 없이 많은 일이 적극적으로 수동적으로 공격을 한다. 이 모든 일을 부부가 같이 풀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 경우도 역시 운명 동지다. 그 최초의 선배가 아담과 하와다. 실낙원을 하고도 저들은 결코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느라 끝도 모를 싸움에 몰입하지 않았다. 자식을 낳고 살다가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죽이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또 다른 실낙원을 경험하고도 저들은 여전히 운명 동지로 살아냈다. 그래서 저들은 여전히 인류의 시조다.

이제 결혼은 득실을 따지는 망설임이다. 결혼이 계약 시대로 전환되면서 혼인서약은 예식 순서에서만 진실하고, 결혼의 참 의미인 소명과 언약의 순결함은 시대착오적이고 진부한 신앙 철학이라 여기는 듯하다. 번영을 외치지만 번성의 결과가 번영인 것을 애써 몰라라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인류의 제일 복은 그저 성경의 사문이 아니다. 태초에 세상 기초를 만드신 그분의 절대명령이자 인류의 지상과제다. 우리는 그것을 소명이라 한다. 인간됨의 소명.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짐승의 본능이 아니고 아바타를 만들어 짝퉁신이 되고픈 욕망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육하고 번성하는 그 일이 우리의 소명인 게다.

부디, 내가 처음 주례한 두 사람이 약속을 잘 지켜내 언약의 순수함과 소명의 풍요로움을 결혼생활 내내 경험하게 되길 기도한다.

정애주 홍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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