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원민족주의 대응할 거버넌스 구축해야

국민일보

[시론] 자원민족주의 대응할 거버넌스 구축해야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입력 2022-05-24 04:05

세계 경제의 내상(內傷)이 심해지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 무난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으나 5개월여가 지난 시점에서 각종 불안 요인들이 쏟아지면서 요동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이 아니더라도 경제 관련 기사에서 인플레이션 심화, 물류 차질, 공급망 교란, 경제안보 등이 빈번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3년 전 급작스럽게 촉발된 코로나 팬데믹이 돌발적인 외상(外傷)이라면 현재의 위기는 상당 기간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하는 내부의 상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각종 리스크가 세계 경제의 성장 기반 약화와 성장 프로세스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세계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자원의 공급국인 러시아(원유 2위, 천연가스 2위, 니켈 3위)와 우크라이나(옥수수 4위, 밀 5위)의 전란으로 인한 경제 제재와 생산 활동 마비의 여파가 세계 경제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차질 우려로 자원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자원 안보에 사활을 거는 자국 이기주의 분위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점이다. 이미 러시아는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한 48개국에 대해 수출 금지 조치를 시행했으며, 멕시코(리튬), 인도네시아(보크사이트, 팜유), 인도(밀) 등 주요 자원 보유국들도 다양한 이유로 국유화, 수출 금지 등의 통제를 강화하면서 자국 중심주의, 국수주의 기조가 갈수록 강화되는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은 순환고리처럼 주요국의 경제안보 논리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공급망 행정명령을 통해 반도체, 희토류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공급망 관리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은 경제안전보장법안, 유럽연합(EU)은 유럽원자재연합(ERMA) 등 다양한 법제를 통해 안정적인 자원 확보와 공급망 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자원안보특별법 제정을 위한 추진 계획을 발표하는 등 자원민족주의에 대응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국가 간 교역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원자재 공급과 소재·부품 및 완제품 생산이라는 네트워크 체계로 운영됐다. 그러나 자원을 무기화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자국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안정 성장을 해치는 부메랑이 돼 자원 보유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로 촉발된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선택과 결단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교역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의 벤치마킹 모델로 세계 7대 무역 강국의 지위를 갖게 됐지만, 자원 측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자원무국(資源無國)이라고 할 정도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를 기록하고 있다. 올 4월까지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의 수입액만 전체 수입의 24%를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 등 원자재 시장 변동에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효율적인 자원 관리는 경제 현안에 대응하는 정책 대안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무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확보를 위한 타협할 수 없는 인프라 체계에 속한다는 관점이 확고히 수립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항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자원 안보 및 공급망 관리 컨트롤타워의 수립과 운영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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