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석 칼럼] 전략적 인내 경계해야

국민일보

[오종석 칼럼] 전략적 인내 경계해야

입력 2022-05-24 04:20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안보리 제재 강화하면서 북한
붕괴 기다린 오바마정부 답습

윤석열정부는 대북 포용정책
포기하고 확고한 한·미동맹
기반으로 북한 선비핵화 초점

북한 미사일과 핵에 대응하는
강력한 억제력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안정적 관리 더 중요해


“헬로(Hello)… 끝(period).”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두 단어로 간단히 답변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미국의 제안에 북한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는 뜻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사실 북한에 대해 응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줄곧 ‘북한과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당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가까운 정책을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을 상대로 ‘러브 레터’까지 주고받으면서 톱다운 형식으로 직접 해결에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와의 직접적 대화에 한층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고 평가했다.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정부 8년간 이어진 대북정책 기조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 등 경제적 압박을 지속하며 북한의 붕괴를 기다린다는 대북정책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를 무시로 일관한 사이, 북한은 오히려 수차례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해 미국 내에서도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초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은 일관되게 외교적 해법의 문은 열려 있으니 언제든 대화에 나서라는 식의 선문답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종전선언 등 갖가지 묘안을 제시하면서 설득했지만, 실제로 북한과 어떤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 자체를 적극적으로 피력한 바가 없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등 온갖 도발에 나서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강력히 규탄하는 등 외교적 공세에만 나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정부에서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냈다. 한반도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오바마정부에서 전략적 인내를 기획한 인물이다.

윤석열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기조로 대북 포용정책에 무게를 실어온 문재인정부와는 달리 확고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의 선비핵화에 초점을 맞춘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명박정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이끌었다. 윤 대통령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방점은 선비핵화에 찍혀 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대북정책 방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두 정상은 연합 군사훈련 확대와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수시 전개를 공식화했으며, 북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외교적 돌파구 마련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거센 반발과 노골적인 도발이 예상된다. ICBM 발사와 핵 실험 등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반도는 당분간 외교적 돌파구보다는 강대강 대치 속에 경색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사일은 미사일로, 핵은 핵으로 맞대응에 나선다는 강경 대북정책이 언뜻 보기엔 속이 시원하고 뿌듯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칫 상황이 악화돼 국지전이 발생하거나 실제로 남북 간 전쟁이라도 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이 입는다. 미국 등 서방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의 공격을 방어하며 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곳곳이 처참한 폐허로 변했고 지금 이 순간도 많은 국민이 희생되고 있다. 서방 언론이 아무리 훌륭하게 포장해도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오바마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보조를 맞췄던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북핵 선해결론 시대 냉각됐던 남북관계로 회귀하는 것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북한에서 확산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대북 백신 지원 문제 등이 부각돼 꽉 막힌 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국익을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종석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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