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세상속으로…] 고단한 단칸방 이웃 위해 ‘주방이 있는 쉼터’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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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세상속으로…] 고단한 단칸방 이웃 위해 ‘주방이 있는 쉼터’를 세우다

<1부> 교회, 세상 속으로 (3) 고시촌 어려운 이웃 보듬는 친구들교회

입력 2022-05-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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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방 식탁 도서 등이 마련된 ‘참 소중한…’ 공간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교제를 나누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월세 3만원 차이로 한 뼘 남짓한 창문을 얻거나 잃는 곳. 안락함과 안전 대신 ‘값싼 비용’이 주거의 최우선 선택 기준이 되는 곳. 대한민국 ‘고시촌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의 현주소다. 최근 찾은 이곳엔 골목과 골목을 잇는 전봇대마다 ‘잠자는 방’ ‘미니 원룸’ 등 예비 세입자에게 최저가를 어필하는 전단지가 경쟁하듯 붙어 있었다.

“건축법상으로는 ‘비주택’.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이죠. 위쪽으로 두 블록 정도 올라가면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인 곳도 있습니다. 자는 동안 다리 한 번 펴기 힘든 공간이에요.”

6년 전 이곳에 교회를 개척했다는 배홍일(59) 친구들교회 목사는 교회가 위치한 상가 옥상에서 동네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관악구 조사 결과(2021년 12월)에 따르면 대학동 거주민 4가구 중 3가구(75.4%)가 1인 가구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고시생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대학동엔 큰 변화가 생겼다. 배 목사는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빈방을 일용직 노동자, 실직·알코올중독·카드빚 등으로 생활고를 겪는 독거 중장년들이 채웠다”며 그들을 위한 공간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배 목사의 안내를 따라 5분쯤 골목길을 걸어가자 고시원 건물 1층 입구에 세 개의 이름이 적힌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해피 친구들’ ‘참 소중한…’ ‘관악주거복지상담소’. 입구 앞을 지나던 대학동 5년 차 주민 주재종(49)씨가 배 목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하루 한 끼 먹으면서 서러워할 때 ‘배 아저씨(배 목사)’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엄청 고생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하하.”

주씨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면서 ㈔길벗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해피 in’이란 곳에서 끼니를 때우던 주민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하던 배 목사는 2년 전 이곳에서 봉사하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같은 고민을 하던 이영우(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신부를 만나게 됐다. 머리를 맞대고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고시촌엔 대부분 주방이 없어요. 라면 하나 마음대로 끓여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명절에 1인 가구를 위한 ‘밀키트’가 전달돼도 무용지물이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죠. 그래서 힘을 모았습니다. 주방이 있는 ‘쉼터’ 만들기가 시작된 거죠.”

친구들교회와 빈민사목위원회가 1000만원씩 보증금을 마련하며 마중물을 길어내자 당시 비주택 거주자 주거상향 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시민단체가 손을 맞잡으며 월세 60만원을 책임졌다. 2020년 7월, 낡은 창고 같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단출하게 출발한 공간은 주민들의 필요에 지역 공동체가 끊임없이 응답하며 날로 풍성해졌다.

배 목사가 ‘해피 친구들’ 공간에서 주민들과 탁구를 치는 모습. 신석현 포토그래퍼

대학동 거주 13년 차 황창현(50)씨는 “시시각각 필요한 걸 얘기할 때마다 라면에 계란과 파가 더해지고, 라면 국물에 말아 먹을 즉석밥과 김치가 생기고,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신나게 운동할 수 있는 탁구장,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과 빔프로젝터가 마법처럼 공간을 채웠다”고 회상했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우울한 기운을 떨쳐낼 수 있는 모임도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독거 중장년 자조 자립 모임 ‘소행모(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장인국(59)씨는 “40년 넘게 대학동에 살았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평생 사진을 찍어 온 노하우를 재밌게 나눴으면 좋겠다 싶어 주민들과 사진 모임을 만들고 전시회도 하다 보니 행복을 느낀다”며 “관계가 단절돼 친구가 고픈 이들에게 이 공간은 정서적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전했다.

작은 교회가 봉사하기까지

“교회 중심이면 불가능해요. 하지만 하나님 중심이면 가능합니다.”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 쉼터 공간을 만들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배홍일 친구들교회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배홍일 친구들교회 목사의 말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 주민들에게 ‘해피 친구들’ ‘참 소중한…’이란 쉼터를 선물하는 과정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속 가르침을 행하기 위한 연대의 연속이었다. 성도 수 20여명의 작은 공동체인 친구들교회에게 연대는 필연적이었다. 교회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연대를 추구한다면 교회 중심적 사고를 벗겨내야 한다는 게 배 목사의 역설이다.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내부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배 목사는 “개척 후 치열하게 자립을 고민할 때 ‘지금은 교회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한 성도의 얘길 듣고 기도를 많이 했다”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공유하며 공동체를 설득하는 것 또한 필수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하는 교회가 먼저 할 것은 무엇일까. 시민단체 대표로서 배 목사와 대학동 쉼터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박승한(63) 관악사회복지 이사장이 대답을 대신했다. “귀를 열고 말을 듣는 거죠. 이 양반(배 목사)은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아저씨들 만날 때마다 ‘요새 뭐 필요하세요’를 달고 살았어요. 그렇게 발품을 팔면서 교회가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한 것 같아요. 난 교회는 안 다니지만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거 아니겠어요.(웃음)”

최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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