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계양이 호구냐”

국민일보

[한마당] “계양이 호구냐”

이동훈 논설위원

입력 2022-05-26 04:10

호구(虎口)는 바둑에서 3개의 돌에 둘러싸이고 한쪽만 트인 곳을 가리킨다. 상대방이 이곳에 돌을 놓으면 바로 잡을 수 있어 매우 안정적인 상황을 뜻한다. 호랑이(虎)가 입(口)을 벌려 먹이를 기다리는 모양과 비슷해 이 용어가 생겼다. 상대방 입장에선 이곳을 침투하면 바로 잡히니 어리석고 위태로운 행동을 의미한다. 호구라는 단어 하나가 형편에 따라 정반대의 뜻을 내포한 중의적 표현인 셈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세상 보는 눈이 없고 어리숙해 이용하기 쉬운 사람이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소비자는 봉’이라는 의미의 ‘호갱’이라는 속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고객에 님을 붙이면 자음접변으로 ‘고갱님’이라고 소리가 나는데 호구+고객님(호구고갱님)이 줄어든 ‘호갱님’에서 님을 빼 호갱이 탄생했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12일 이 지역 상가에서 유세를 하던 중 한 시민으로부터 “야, XX. 계양이 호구냐”라는 욕설 섞인 한마디를 들었다. 여권 대선 후보였던 그의 출마가 대장동 사건 수사 방탄용 아니냐는 의혹에다 정치 고향인 경기 성남시 분당 대신 민주당 표밭인 인천 지역을 택한 데 대해 유권자를 우습게 본다는 비판이 거세진 상황이었다. 유튜브 등에서 이 한마디는 유권자 표심을 정확히 압축한 촌철살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국민의힘 유세장에서도 이 후보를 공격하는 단골 구호로 등장했다. 분당갑에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22일 윤형선 계양을 후보 지원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 후보가 표심을 가볍게 보고 덤볐다가 오히려 ‘호구 잡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열흘 전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10% 포인트 정도 앞섰던 이 후보가 최근 3개의 조사에서 윤 후보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당하거나 박빙으로 앞선 것을 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동훈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