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야당 복 터진 윤 대통령

국민일보

[여의춘추] 야당 복 터진 윤 대통령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2-05-27 04:09

이명박정부 청와대의 대국회 전략은 ‘자기들(여야)끼리 맨날 싸움이나 하라 하고 우린 우리 국정과제나 열심히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야당이 이명박정부 핵심 국정과제와 별 상관없는 사안으로 여당과 지루한 싸움을 벌이다 보면 청와대를 견제하거나 국정과제에 시비를 걸 겨를도 없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당시 여야는 종북 논쟁이나 부자 감세, 선거구제 개편 등 그리 급하지 않은 문제로 수시로 싸웠고 국회는 파행되기 일쑤였다. 이 대통령은 그런 ‘일 안 하는 국회’를 한껏 무시했다.

윤석열정부의 대국회 전략은 뭘까 생각해봤다. 한 자도 안 고치고 ‘자기들끼리 맨날 싸움이나 하라 하고 우린 우리 국정과제나 열심히 추진한다’로 하면 될 것 같다. 다른 게 있다면 여기서 ‘자기들’은 ‘여야’가 아니라 ‘야당 스스로’일 것이다. 좀 지나면 윤 대통령도 야당을 아주 깔보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력한 개혁으로 민심에 부응할 테니 민주당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 일을 두고 잘했네, 못했네 하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가 1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말이다. 보통 사람들도 대사를 앞두고 있으면 큰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불만이 있어도 쉬쉬하고 참아 넘긴다. 구태여 싸운다면 큰일을 치르고 난 뒤 달려든다. 그런데 지금 그 보통의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민주당이다. 박 위원장이 당내 강경파를 향해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 대중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딱 맞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는 것, 그게 민주당을 망가뜨린 핵심 요인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다수당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른다. 국민한테 신임을 묻기 위해서다. 인기가 없는데도 다수당인 걸 내세워 무책임하게 기득권을 유지하느니, 국민이 자신들을 심판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다시 힘을 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분열과 정치적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게 조기 총선 같은 신임을 묻는 절차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선 그런 게 없다 보니 대선에서 패배한 세력임에도 여전히 다수당 특권을 내세워 입법 독주와 일방적 국회 운영, 말 뒤집기를 일삼고 있다. 사실 대선 패배 자체가 불신임을 받은 것인데, 그런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독선적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 정치다.

그런 오만 때문에 과거 국민의힘을 조롱하던 표현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야당 복이 터졌다’는 말이 그대로 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 초보라 집권 한 달도 안 돼 실수를 연발해 지방선거 국면이 유리해질 수도 있으리란 바람과 달리 민주당 스스로 내분에 휩싸여 선거를 그르치고 있고, 국정 견제도 소홀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중지란이 금방 정리될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심각한 노선 투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런 내분이 있을 때마다 강경파가 득세했고 중도파를 쫓아내곤 했는데, 어쩌면 이번에도 박 위원장과 그에 동조하는 이들만 쫓겨날지 모를 일이다. 금태섭 전 의원을 비롯해 그렇게 쫓겨난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 박 위원장이 당내 기득권 세력에게 ‘아름다운 퇴장’을 주문했지만 결코 아름답게 물러설 그들이 아니다. 위기이다 싶으면 새 사람을 영입해 비대위를 발족하고, ‘딱 그때만 반성’을 해서 살아남은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여러 번 봐 왔다.

제1야당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팬덤 정치에 함몰돼 국정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국민적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마 최근 사태를 지켜보면서 민주당의 쇄신에 대한 기대를 접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반성이 생존 전략이던 당이 이제는 그 반성마저도 하지 말자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쇄신이 제대로 되겠는가.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이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안 야당 세력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정치를 너무 같은 사람들한테만 맡겨놓았다. 그것도 팬덤 정치로 편을 가르고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에게. 꼬리(팬덤)가 머리를 흔드는 상황이 올 때까지 소신 있는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 당내 침묵 세력 또한 책임이 작지 않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