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도어스테핑

국민일보

[한마당] 도어스테핑

라동철 논설위원

입력 2022-05-31 04:10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출퇴근길에 공관 3층 로비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자주 갖는다.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가진 회견만 100차례가 넘는다. 한 명을 여러 명이 매달리듯 빙 둘러싸고 대화한다는 뜻에서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로 불리는 이 회견은 국정 최고 책임자가 언론과의 수시 대면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자리다. 2000년대 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 정착된 후 후임자들로 이어진 부라사가리는 일본 총리의 일상적인 언론 소통 방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기자들이 대통령과 대면하는 게 극히 제한적이었고 주요 현안이 있을 때조차도 직접적인 육성을 듣는 게 가물에 콩 나듯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그저 부러운 전통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우리나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부라사가리와 비슷한 형식의 출근길 약식 회견인 ‘도어스테핑(door stepping)’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 로비에서 수시로 열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인 지난 11일 취재진을 만나 취임사에 ‘통합’이란 단어가 빠진 것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도어스테핑을 가졌다.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다음 날인 30일에도 추경으로 인해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취재진의 지적을 받고는 “영세 자영업자가 숨넘어가는데 그것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손실보상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회견 시간이 짧고 내용도 피상적인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대통령이 ‘제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임기 내내 지속되길 바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과의 소통은 대통령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정식 기자회견도 자주 열어야 한다. 언론과의 직접적인 소통은 여론을 가감 없이 접하고, 현안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것만 잘해도 성공할 대통령의 조건을 절반은 갖춘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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