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손흥민의 ‘아빠 찬스’

국민일보

[한승주 칼럼] 손흥민의 ‘아빠 찬스’

입력 2022-06-01 04:20

축구 기본기 집중한 훈련과
늘 겸손하라는 가르침이
세계적 선수 손흥민 만들어

사회 지도층 '아빠 찬스'는
지인이나 직위 이용한
그들만의 리그여서 박탈감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직접 몸으로 뛰며 희생한
아버지 손웅정은 달랐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손흥민이 아버지 손웅정씨에게 보내는 헌사다. 이 말은 정확해 보인다. 축구 선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기를 원했다. 먼저 길을 정해주고 싶진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막내아들이 축구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보험을 든 느낌이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니 힘들더라도 견뎌내겠지 하는. 아버지는 스스로를 열정만 있고 기술은 부족했던 선수라고 낮췄다. 아들은 자신과 정반대 시스템으로 가르치고 싶었다. 경기 성적으로만 유소년 선수를 평가하는 학교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축구 명문 학교에 보내는 대신 직접 가르쳤다. 공부로 치면 홈스쿨링이었다.

아버지는 기본기를 중시했다. 축구의 기본은 볼 리프팅이다.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 이 단계를 지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기본이 되어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고, 덜 다친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자신의 책에서 아들은 기본기 훈련에만 7년을 보냈다고 적었다.

훈련은 아들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뛸 때도 계속됐다. 아들이 10대 후반이던 2011년, 한국으로 5주간 휴가 나왔을 때다. 아들에게 매일 1000번씩 슈팅 훈련을 시켰다. 오른발 500번, 왼발 500번. 매일 1000번씩 공을 차던 손흥민은 이제 이적료 1000억원(추정)의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손흥민을 아시아 선수 최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으로 결정지은, 2021~2022 시즌 23호 골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는 없다. 지독한 훈련의 결과다.

아버지가 훌륭한 건 축구 기술을 가르쳤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겸손이라는 미덕을 가르쳤다. 아들이 골을 넣고 들떠서 평정심을 찾지 못할 것을 경계했다. 독일 프로리그에서 데뷔 골을 넣었을 때는 아예 아들의 노트북을 뺏어버렸다. 아들에게 늘 감사하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마음을 비운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다고 가르쳤다. 덕분에 손흥민은 자신의 기록보다는 팀 승리를 우선으로 하는 선수가 됐다. 시즌 후반, 치열한 득점왕 경쟁 속에서도 페널티킥을 자신이 차겠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 겸손은 힘이 셌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보라. 소속팀 토트넘의 동료는 텅 빈 골문 앞에서도 자기가 넣지 않고 손흥민에게 공을 주려고 두리번거렸다. 동료들은 그의 득점왕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마침내 ‘골든부트’(득점왕 트로피)를 들어 올린 손흥민을 가리켜 외신은 ‘이타적인 월드클래스’라고 소개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건 또 있다. 바로 노력의 중요성이다. 아들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성공은 선불”이라고 말했다. 지금 인생을 투자해야 10년, 20년 후에 결실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손흥민은 자신의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천재성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24시간을 통째로 축구에 들이부어야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 과한 겸손이자 대단한 노력이다. 축구를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축구만 하면 된다고도 했다.

축구 DNA뿐 아니라 겸손과 노력까지 물려받았으니 손흥민은 진정한 아빠 찬스의 주인공이다. 그 찬스는 아버지가 자신의 연줄로 아들을 축구 명문학교나 구단에 들여보내 엘리트 코스를 밟도록 하는 게 아니었다. 아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운동장을 뛰면서 같이 땀을 흘리는 거였다. 해외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밥솥을 들고 가 밥을 지어주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강타한 불공정의 중심에는 그릇된 아빠 찬스가 있었다. 주로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부모가 직접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지인이나 직위를 이용해 제3자가 도와주는 게 문제였다. 그 기회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들만의 리그였다. 대다수의 사람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그런 찬스였다.

손흥민의 아버지를 보며 생각한다. 이런 아빠 찬스라면 우리도 감히 따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게 기다리는 것,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며 함께 도와주는 것,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 잡고 살만한 굳건한 마음가짐을 잡아주는 것, 겸손과 이타심을 일깨워주는 것 말이다. 아빠 찬스는 바로 이래야 한다는 걸, 손흥민 아버지가 보여줬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