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믿었는데 이상한 짓 시키고 몸 만져… 또 다른 상처[이슈&탐사]

국민일보

‘명성’ 믿었는데 이상한 짓 시키고 몸 만져… 또 다른 상처[이슈&탐사]

[상담시장 X파일] <5화>도와달랬더니 유린①

입력 2022-06-02 04:05 수정 2022-06-02 04:05
이지윤(가명)씨가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이슈&탐사팀 사무실에서 성폭행 피해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심리상담을 받던 중 겪은 일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그는 TV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한 심리상담가였다. 책도 여러 권 낸 이 분야 전문가였다. 성폭력 피해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지윤(가명·여)씨가 한주성(가명)씨를 찾은 건 그런 이름값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음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다치고 말았다. 찢어진 마음을 꿰매보려고 상담소를 찾았는데 한씨가 더 난도질을 해버렸다.

이름도 그럴싸한 ‘보디스캔’

상담사 한씨는 이씨에게 눈을 감고 스스로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게 했다. 바로 앞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이씨 손이 민망한 곳을 피해가자 그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가슴과 성기도 빠짐없이 만지라”고 했다. ‘가슴’이니 ‘성기’니 하는 단어를 직접 입에 올렸다. 이걸 ‘보디스캔’이라며 몸에서 불편한 곳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남자 앞에서 자기 몸을 만진다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지만 치료의 일환이라고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둘만이 마주한 좁은 상담실은 상담사의 말을 거역하기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일단 그는 세간에 알려진 전문가였다.


하라니 했을 뿐인데 손이 그곳에 머물자 또 “가슴과 성기가 불편하군요”라며 그 부위를 콕 집어 말했다. 그러고는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이씨는 자신이 몸을 더듬는 모습을 보면서, 민망한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 한씨가 흥분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몸의 감각을 깨우는 방법이라는 또 다른 치료 과정도 거북했다. 한씨는 바로 앞으로 다가와서는 “좀 만져도 되겠습니까”라고 묻더니 이씨의 볼과 귀 뒷부분을 만졌다. 그러면서 “어디가 더 민감하느냐”고 물었다. 왼쪽인 거 같다고 했더니 “그럼 이쪽을 더 해줘야 한다”며 계속 만졌다. 그의 손이 어깨 부위로 내려가려고 하기에 움찔하며 “직접하겠다”고 말했다. 한씨에게 거부 의사를 밝히기는 처음이었다.

그 얘길 굳이 왜?

이씨가 예민한 것이었을까. 적어도 성폭력 피해 충격을 안고 있던 그에겐 이 모든 게 불쾌했다. 이씨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건 불과 한 달여 전이었다. 그는 2020년 11월 초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당했고 2주 뒤 한씨를 찾았다. 자신이 알던 심리상담사에게 소개받았다. 면담을 두 차례 한 뒤 본격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한 건 그해 12월 중순이다. 이날이 그 첫날이었다. 이씨가 접촉을 거부하자 한씨는 “그러라”며 순순히 물러섰다.


문제의 발언이 나온 건 그 다음이었다. 한씨는 “평소 자위행위는 하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이씨는 친구 얘기로 말을 돌렸는데 한씨는 되레 집요하게 조언을 이어갔다. 그는 “바이브레이터(진동기) 같은 기구는 내성이 생길 수 있고 자칫 위험할 수 있으니 손가락으로 쾌감을 느껴보라”고 설명했다. 여성 성기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와 성교육에 가까운 묘사가 등장했다. ‘시각적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했다. ‘야동’을 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니,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는 식으로 제가 말했는데 계속 멈추지 않았어요. 자기 혼자 들떠서 폭주기관차처럼….” 한씨가 정말 도취돼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씨에게는 ‘폭주기관차’로 묘사할 만큼 충격적인 순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씨가 ‘19금’ 조언을 한 경위에 대해 양측 설명은 엇갈린다. 느닷없이 꺼냈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한씨는 이씨가 성적 욕구에 관한 얘기를 먼저 했다고 주장했다. 자위 방법을 설명한 사실은 그도 인정했다.

“내가 불감증 환자인가”

한씨가 이씨에게 적용했다는 트라우마 치료법은 SE(Somatic Experiencing·소매틱 익스피어리언싱)로 불리는 신체 중심 접근법이다.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유명하다. 트라우마 같은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려면 문제를 겪은 신체 감각을 깨워 억눌린 감정을 방출해야 한다는 게 SE의 원리다.

하지만 이씨는 SE가 뭔지, 왜 하는지,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 같은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신체접촉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한씨는 상담치료를 이미 시작한 상황에서 이씨 몸에 손을 대기 직전에야 “만져도 되느냐”며 동의를 구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치료라고 하니 선뜻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씨 입장이다.

“그때부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니겠지’ 생각했어요. ‘치료의 일종이겠지’ 생각하면서 넘어가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자리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자위행위는 좀 하십니까’ 하더라고요.”

이씨는 “저는 성폭행 피해자지 불감증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잖으냐”고 반문했다. 1년도 넘은 일이었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그는 “이런 일을 당해 너무 화가 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울분을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일 땐 사무실 밖으로 그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이씨는 2주 뒤 한씨를 찾아가 항의했다. 행여 미친 사람으로 몰릴까 봐 그사이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적으로 멀쩡하다”는 소견까지 받아뒀다. 한씨는 오해라고 맞서면서도 “충분히 소통이 안 된 점,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두 사람 다 당시 대화를 녹음했다. 취재팀은 이씨에게 녹취록을 받아 확인했다.

이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한씨를 고소했다. 경찰은 혐의를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지난해 12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올해 4월 말 법원에 직접 판단을 요청하는 재정신청을 넣었다.

미숙한 전문가

법적으로 문제삼기 어렵다고 한씨의 상담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그의 SE 활용법과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SE 전문가인 한 심리연구소 소장은 올해 1월 이 사건에 대한 소견서에서 “가해자는 치료기법 훈련을 받지 않고 상담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SE는 감각 자각과 터치가 치료의 핵심 부분이지만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내담자에게 꼭 필수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성폭력 트라우마를 겪은 내담자에게 접촉은 트라우마의 재경험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라며 “왜 치유 과정에서 접촉을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상담 초기에) 자위행위를 물어보거나 마사지법을 알려주거나 접촉을 했다는 것은 트라우마 내담자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씨가 이씨 상담에 활용한 교재는 미국 심리학자 피터 레빈 박사의 저서 ‘몸과 마음을 잇는 트라우마 치유’다. 레빈 박사는 SE 창시자이자 권위자다. 한씨는 책에 나온 걸 적용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해 심리연구소장은 “SE 트라우마 치유법을 소개하는 차원이지 이 책만 보고 실제 상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소견서에 적었다.

레빈 박사의 책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서주희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장도 이슈&탐사팀 질의에 “이 책은 SE의 입문서 역할을 하는 정도”라며 “좀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SE 기법을 사용하려면 SE 전문 트레이닝 과정을 밟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레이닝 부분에서 터치에 관한 내용이 나오기는 한다. 다만 해당 사례에서 언급된 방식으로는 책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덧붙였다. 취재팀은 저자 레빈 박사에게도 한씨의 방식이 적절했는지 등을 지난달 20일 이메일로 질의했지만 1일 현재까지 회신받지 못했다.

치료와 추행의 경계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특히 성적 트라우마는 치료할 때 동성 간에도 접촉에 굉장히 민감하다”며 “가능하면 터치를 하지 않고, 꼭 필요하다면 미리 그 사실을 고지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자와 신뢰가 아직 형성되기 전인 상담 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매우 불쾌했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안산 단원고 스쿨닥터를 지낸 정신과 전문의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은 한씨의 자위 관련 발언에 대해 “성적인 행동을 회피하는지 등등 그런 게 궁금해서 물어봤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이진 않다”며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은 치료자라면 누가 성적 피해를 입은 사람한테 그런 걸 물어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모든 내용이 심리치료와 추행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려 있다”며 “성적인 이슈는 피해 당사자가 기분 나쁘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씨가 먼저 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주장하는 한씨는 “그러면 왜 대화를 끊지 않고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교육적 멘트’였다고 대답했다. “내담자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땐 상담적 요구거든요. 그러면 보통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죠. 부부 상담을 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들이거든요. (이씨 경우엔) ‘어? 이 주제가 아닌데’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설명을 해준 거죠.”

하지만 이씨와 언쟁한 녹취록을 보면 그는 문제의 대화를 왜 중단하지 않았느냐는 이씨에게 “내담자에게 내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때 이씨는 “누가 누구에게 안전을 위협받느냐”고 되묻는다.

내가 엉터리면 다 사기다?

SE 전문교육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한씨는 엉뚱한 대답만 늘어놨다. “제 전공이 트라우마다” “트라우마 쪽으로 주로 책을 번역하고 썼다” “트라우마 강의도 한 사람이다” “어차피 국가면허가 있는 게 아니다” 등등. 그는 “임상 경험으로 전문성을 따져야 한다”며 “그걸(특정 교육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SE 임상 경험이 많으냐는 질문엔 “네, 출판도 하고 학교 강의도 하고 수련도 받고 이러니까…”라고 답했다. 이런 대답만으로는 그가 SE 전문가인지 알 수 없었다.

한씨는 자신이 트라우마 전문가라고 강조하며 SE 같은 치료법을 충분히 활용할 자격이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보통은 다양한 방법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데 그걸 자격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기관의 상담 프로그램이 다 사기라고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와 미숙함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현실에는 미숙한 전문가가 존재한다. 제도적 체계가 허술한 심리상담 분야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세계에선 전문가가 미숙한 치료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미숙한 이들이 전문가 행세를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을 찾아간 이들은 온갖 위험에 노출된다. 이씨가 그런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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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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