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도 ‘몸치료사’ 취득·발급 가능… “이 세계는 무법천지”[이슈&탐사]

국민일보

성범죄자도 ‘몸치료사’ 취득·발급 가능… “이 세계는 무법천지”[이슈&탐사]

[상담시장 X파일] <6화>도떼기 상담시장

입력 2022-06-08 04:05 수정 2022-06-08 04:05
“난 사업자등록증도 없이 집에서 (심리상담으로) 아주 알차게 돈을 벌고 있다.” 자칭 심리상담 고수라는 남성이 전화 상담 중에 자랑처럼 떠벌렸다는 말이다(국민일보 5월 26일자 12면 참고). 그는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엉터리 상담을 하고는 돈을 받아 챙기고 있었다.

그가 내민 자격증은 ‘한국○○진흥원’이라고 자칭한 사설업체가 발급한 심리상담사 1급 민간자격증이다. 8만8000원짜리였다. 이걸로는 아쉬웠는지 삼성 공채 출신이니 어디 부부학교 수료니 하는 이력을 갖다 붙였다. 그는 “나한테 돈 내고 배워서 어플(애플리케이션)에서 상담하며 돈 벌어라”고도 꾀었다고 한다. 엉터리 상담으로 모자라 엉터리 상담사를 키우며 돈을 벌겠다는 얘기다.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한다고 하자 막말을 퍼부었다고 피해자는 전했다.

어처구니없겠지만 저 ‘상담 고수’가 저지른 불법은 하나도 없다. 애초 법으로 정해진 심리상담 자격이라는 게 없다. 그러니 자격이 아예 없어도 심리상담사를 자처할 수 있다. 원하면 심리상담센터도 차릴 수 있다. 성범죄, 폭력, 사기 같은 전과가 있어도 가능하다.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찬 심리상담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런데도 심리상담사나 심리상담센터를 도맡아 관리하는 기관이 없다. 이슈&탐사팀이 확인한 이 세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엉터리 자격도 신청만 하면 등록된다

엉터리 심리상담사 난립 배경에는 헐값에 자격을 공급하는 민간자격시장이 있다. 심리상담시장만큼이나 관리가 허술한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돈벌이가 되는 장르가 심리상담이다. 관련 자격만 업체마다 수십종씩 팔고 있다. 취재팀이 딴 심리상담사 1급은 이 중 하나에 불과하다(국민일보 5월 25일자 1·4·5면 참고).

정부의 민간자격정보서비스(PQI)에 등록된 심리 관련 민간자격은 지난달 19일 기준 모두 4251개였다. 2008년 9개였던 이 자격은 이후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더니 7년 만인 2015년엔 한 해에만 543개가 쏟아졌다. 올해는 지난달 19일까지 229개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 속도가 지속되면 연말엔 550개를 넘기며 사상 최다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만큼 민간자격 만들기가 쉽다. 소관 기관인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연)에 신청서만 내면 된다. 새 자격의 품질이 어떤지, 신청자가 그 자격을 내줄 만한 사람인지 엄격히 따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 성범죄 전과자가 민간자격을 발급하겠다며 등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체 접촉이 포함된 분야였지만 역시 제지당하지 않았다.

자격기본법이 막는 민간자격은 크게 3가지다. ①다른 법령이 금지하는 행위 ②국민 생명·건강·안전과 국방에 직결되는 분야 ③선량한 풍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 정부는 심리상담이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한 정부 관계자는 “치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규제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무부처가 (심리상담을) 치료라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심리적 힐링’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다”고 전했다.

성범죄자도 심리상담센터 차릴 수 있다

심리상담 관련 민간자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듯 이런 자격을 따는 데에도 제약이 없다. 민간자격 취득을 제한하는 법령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범죄나 살인을 저지르고 출소한 사람도 심리상담사 자격을 따서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몸치료사, 성상담사, 아동심리상담사 …. 듣기만 해도 아찔하지만 이런 것들이 다 가능하다.

범죄자를 비롯한 부적격자가 민간자격을 내걸고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더라도 막기 어렵다. 법에 심리상담센터 개설 요건이 따로 없어 사업자등록만 하면 바로 영업을 할 수 있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구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카운셀링(상담) 영역이 굉장히 넓은데 여기에 관련된 민간자격증이 5000개가 넘는다”며 “심리상담센터는 개설할 때 마트랑 똑같다. 사업자등록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민간자격은 자격 분야에 따라 주무부처가 지정된다. 심리상담의 경우 무슨 심리냐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타로심리) 농림축산식품부(꽃차색채심리) 등이 더러 끼지만 대부분은 보건복지부가 맡는다. 하지만 말이 주무부처지 관련해서 하는 일은 없다. 누가 해당 자격으로 상담소를 차리고 사고를 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정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리상담센터 관리 현황을 묻자 당연하다는 듯 “복지부 소관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심리상담센터를 관리하는 별도 기관이 없는 거냐는 질문엔 “그것도 아니고 (그냥) 이익단체라니까요”라며 “마트 개설할 때 정부가 관리하는 거 봤느냐”고 되물었다.

정작 민간자격 발급업자들은 자신들이 내주는 자격이 공인자격인 양 주무부처를 강조한다. 자격증에 새겨 넣기도 한다. 해당 자격과 관련해 실질적 기능을 하지 않는 정부 부처들이 업자들에겐 근사한 포장지로 쓰이는 셈이다. 이건 불법이 아니다. 각 부처를 승인·심사·검증기관으로 적으면 거짓·과장광고가 되지만 ‘주무부처’라고 표기하거나 그냥 이름만 쓰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이름값은 톡톡히 누리는 것이다.

심리사냐 심리상담사냐

혼탁한 심리상담업계를 정화하려면 자격 법제화가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현재 여러 기관이 제각각 발급하는 심리상담 관련 자격을 국가자격으로 통일해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엉터리 심리상담사가 발 붙일 수 없고 심리상담 서비스의 품질 관리도 가능해진다고 본다.

현재까지 3개 관련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지만 전문가집단 내 주도권 싸움에 거의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다. 각 학계를 대변하는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상담학회는 자격 요건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두 학회가 원하는 국가자격은 이름부터 다르다. 상담학회는 ‘심리상담사’로, 심리학회는 ‘심리사’로 지칭하기를 원한다.

심리학회는 심리상담을 심리학 기반 서비스로 본다. 이들은 심리사 자격을 따려면 심리학 과목을 반드시 이수할 것을 요구한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말 발의한 심리사법안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심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국가시험을 보려면 석사 이상 학력을 취득하도록 했다. 현재까지 발의된 관련법안 중 문턱이 가장 높다. 박사까지 따면 최소 실무수련 기간(1년)과 시간(1000시간)이 석사 학위자(2년·3000시간)보다 줄어든다.

상담학회는 심리사 입법 시도를 직역 이기주의로 본다. 상담학 사회복지학 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상담을 다루는데 심리학 과목만 인정하는 건 편협하다는 주장이다. 심리상담사 자격을 규정하는 국민마음건강증진 및 심리상담지원법안(지난 3월 말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 발의)은 심리학 외에 상담학 등 다른 관련 과목을 이수해도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또 대학까지만 나오더라도 심리상담 관련 업무에 3년 이상 종사하면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이 같은 달 발의한 심리상담사법안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상담학 심리학 등 관련 과목을 이수하지 않았더라도 심리상담 관련 시설에서 5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으면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허들이 가장 낮은 법안이다. 현재 각 진영은 심리사법안과 마음건강증진법안을 중심으로 입법 대결을 벌이는 양상이다.

한국상담심리학회는 심리학회 소속이지만 입장이 또 다르다. 회원 중에 심리학 비전공자가 많은 만큼 심리사 입법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만만치 않다. 상담심리학회는 회원들을 다독이며 양대 학회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엔 심리사법안에 대해 “심리학사가 아닌 경우 심리사로의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아지게 된다”며 ‘심리학 관련 과목 이수’를 ‘상담 및 심리평가 관련 과목 이수’로 수정할 것으로 요구했다.

밥그릇 싸움에 또 물 건너갈라


복지부 산하 보건사회연구원은 관련 협의체를 구성했다. 지난달 18일 첫 회의를 했지만 각 진영의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네 차례 회의가 남아 있지만 의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중규 심리학회 부회장은 “좁혀질 수 있었다면 벌써 합쳤을 것”이라며 “심리사 따로, 상담사 따로 법안이 통과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주마다 세부 요건만 다를 뿐 전문상담사와 심리사가 각각 법으로 규정돼 있다. 활동 영역도 구분된다. 전문상담사는 학교·재활·직장·대학상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상적 상담 업무에 집중한다. 심리사는 심리적으로 좀 더 취약한 내담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에 가까운 심리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심리상담사들은 심리상담을 심리치료로 보지만 우리나라에서 ‘치료’는 법적으로 의사들 영역이다. 심리사법안은 심리사 역할에 ‘심리치료’를 넣었다가 대한의사협회 반발에 부딪혔다. 의료법은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금지하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소관인 심리치료를 심리사법으로 허용하면 법적으로 상충한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심리치료를 빼고 나면 심리사와 상담사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때도 교통정리가 과제다. 심리학회 측은 공황장애나 우울장애 같은 의료적 진단을 받을 정도의 내담자를 심리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담사는 부부·학업·직업·진로 등 일상적 상담을 담당하면 된다는 게 이들 생각이다. 하지만 김희수 상담학회장은 “미국은 심리사와 전문상담사의 역할이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기능이 거의 유사해 양쪽 법안이 따로 통과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이미 각 학회 자격을 갖고 현장에서 활동 중인 상담사들은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어느 쪽 요구가 관철되느냐에 따라 전문상담사에서 무자격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상담사는 “이미 상담심리학회 2급 자격을 갖고 있지만 혹시 몰라 학점은행제로 심리학 전공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가 누구 손을 드느냐에 따라 심리상담기관들의 표정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법제화 시 심리상담기관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이 낮게 잡아도 1조원, 높게 잡으면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설명했다. 5조원은 코로나19로 호황을 맞은 밀키트(가정간편식) 시장과 비슷한 규모다.

심리학 수업을 듣고 있다는 전문상담사는 “국가자격이 되면 특정 학회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점에서 환영”이라며 “여러 요구를 잘 절충해 좋은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밥그릇 싸움만 하다 또 물 건너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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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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