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성공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

국민일보

[박현동 칼럼] 성공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

입력 2022-06-14 04:20 수정 2022-06-14 04:20

총론은 긍정적이나 기저효과/ 각론은 거칠고 디테일 부족해 /정책 방향성만큼 현실도 중요
척진 마음에 보복인사 피하고/ 빚진 마음에 보은인사 없어야 /괴물과 싸우다 괴물 되지 말길
다양성 부족한 검찰중용 인사 /집단사고 부작용 생겨날 우려/대통령 언어도 정치(精緻)해야

갓 한 달 지난 윤석열정부를 평가하기엔 좀 이르다. 정책의 방향성만 제시됐을 뿐 과정과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시점에 내리는 평가엔 한계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결론부터 말하면 일단 긍정적이다. 다만 디테일은 다듬을 필요가 있다.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국정운영의 방점을 자유와 시장경제에 두고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추진한 것은 바람직하다. 우측 깜빡이 켜고 좌회전하지 않은 것이다. 대북 메시지를 단호하게 전달한 것도 나쁘진 않다. 긍정론의 근거다. 하지만 상대평가 성격이 강하다. 즉 전임 정부와 비교해서 나온 기저효과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전달 방식은 다소 거칠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것과 도어스테핑으로 상징되는 소통, 한·미동맹 복원 등 몇몇 상징적 조치 또한 박수받을 만하다. ‘이념’과 ‘이상’에 방점을 둔 문재인정부와 달리 ‘실용’과 ‘현실’에 초점을 둔 것은 옳다. 국가는 이념의 결사체가 아니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국정운영에서 옳은 게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옳음이 현실에 바탕을 둘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 먹고사는 문제와 국가 정체성이 이념과 이상에 좌우되면 실패한다는 것을 전임 정부에서 처절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반면교사 차원에서 문재인정부 과오를 짚어보자. 문재인정부 주축은 86세대였다. ‘끼리끼리 정권’이었다. 당장 꼽을 수 있는 사람만 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그들은 청와대 등 정부 요직과 여권 핵심층을 형성했다.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에 능하고, 투쟁으로 권력을 쟁취한 경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도덕적 우월감은 오랜 세월 그들의 심리를 지배해 왔고, 정책으로 스며들었다. 다름은 배척의 대상이었다. 출발부터 집단사고(Groupthink)의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의를 향한 초심과 뜨거운 열정은 박수받기 충분했으나 권력의 맛을 알고부터 변질됐다. 명예가 돈을 탐할 때 그 결과는 뻔하다. 문재인정부의 첫 번째 실패 요인을 꼽으라면 인사 문제일 터다. 조국 사태가 단적인 예다. 그들만의 리그는 다수 국민과 유리됐고, 그들 속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를 빚었다. 그 끝은 아는 바다.

윤석열정부는 어떤가. 인사 추천 및 검증은 물론 사정기관에 이어 금융기관까지 검찰 출신을 앉혔다. 전임 정부가 이념에 바탕을 둔 ‘운동권 공화국’이었다면 새 정부는 사정에 토대를 둔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 “필요하면 또 쓰겠다” “과거엔 민변이 도배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옳은 인식이라고 할 순 없다. 취지와 방향성이 맞는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정책은 없다. 때와 현실, 국민의 인식 즉 여론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상황에 따라선 속도를 줄이거나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디테일의 실패다. 너도 그랬으니 나도 그런다면 정권을 교체한 이유가 사라진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한다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듯 새 정부 인사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가 유능과 무능의 관점에 있지 않음을 대통령도 모르진 않을 테다. 아는 사람 쓴다고, 또는 검찰 출신을 중용한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다양성의 상실, 견제와 균형의 결여가 초래할 위험성을 걱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척진 마음에 보복인사를 하고, 빚진 마음에 보은인사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끝내 실패한다. 문재인정부가 그랬다. 전임 정부에서 보였던 집단사고의 부작용이 새 정부에서 초래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특히 유능한 집단, 똑똑한 사람끼리의 집단사고는 국가에 치명적 사고(事故)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 청와대란 곳은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판단이 옳다 하더라도, 경청의 모습을 보이고 시기를 조절했더라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과연 국민은 대통령을 우유부단한 리더로 기억할까, 아니면 소통의 리더라고 평가할까. 덧붙여 언어도 정치(精緻)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교육부도 경제부처”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발언 취지를 이해하나 ‘의지의 과잉’ 내지 ‘철학의 빈곤’이라는 느낌이 묻어난다. 이 역시 디테일의 문제다. 성공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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