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국민일보

[여의춘추]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2-06-17 04:06

6·1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달 18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전기, 수도, 공항, 철도 등 민영화 반대’라는 문구를 올렸다. 전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회 발언에 대한 대응이다. 김 실장은 공기업 민영화에 찬성하냐는 질문에 “인천공항공사도 한국전력처럼 운영은 정부가 하고 40% 정도만 민간에 팔면 주주들이 생기고 투명해져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혹시나 해서 “민영화로 회사를 팔자는 게 아니고 민간 부문을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지적에 이 위원장은 “언제 민영화한다는 말 하면서 민영화했냐”고 말했다. 대부분 민주당 의원들이 민영화 반대에 동참했고 지지자들은 이를 적극 퍼날랐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려 예상된 논쟁이다. 보수 정권은 통상 ‘민간 중심의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진보 및 정치적 반대 세력은 “윤석열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을 빌미로 민영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지레 짐작한다. 막상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부동산 정책, 디지털 인재 양성, 민간 일자리 창출 등에 집중했을 뿐 공공 개혁은 관심밖이었다. 공약집에 규제 혁파,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을 위한 ‘민·관 과학기술위원회’ 신설 정도가 나오지만 이를 공공 정책으로 볼지 의문이다. 같은 보수인 이명박 박근혜정부에 비해 콘텐츠가 부실했다. 집권한 뒤에야 4대 개혁 일환으로 공공 개혁을 내세웠다.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지방선거 당시 대통령실에서 “공기업 민영화를 검토한 적도, 추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대는 막무가내다. 선거가 끝난 뒤인 지난 10일에도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은 집회를 열고 “윤석열정부가 추진할 민영화를 막아내자”고 외쳤다.

정작 역대 공기업 민영화를 가장 강력히 펼친 정부는 김대중정부였다. 민주당 인사들은 “전방위 구조조정을 추진하던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자서전’에서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은 자유 경쟁과 책임 경영이다. 공공 부문에도 시장 경제 논리를 적용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개혁 없이는 국제 신인도를 높일 수 없던 절박함을 (공공부문의) 환골탈태 기회로 삼자”고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떠밀린 게 아니라 외환위기를 이용해 소신을 펼쳤다고 보는 게 옳다. 김대중정부 때 8개 공기업이 민영화됐다. 노무현정부는 민영화 대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제정해 투명성 제고와 책임 경영에 주력했다. 공공기관 153곳을 지방으로 보내 지역균형발전을 꾀했다.

문재인정부는 기존 진보정권들과 달랐다. 공공기관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일자리 늘리기용으로 삼았다. 부동산 정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의 임대주택 공급에 주력했다. 노무현정부에 이어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민영화는 당연히 없었다. 채찍은 버리고 당근만 계속 제공했다. 노무현정부의 느슨한 개혁보다도 훨씬 후퇴했다. 공공기관 임직원 수가 2016년 32만8000명에서 지난해 44만3000명으로 증가했고 인건비가 이 기간 30조원 늘었다. 공공기관 부채는 493조원에서 583조원으로 급증했다. 미래세대의 부담만 가중됐다. 진보정권이 공공기관의 효율성 제고보다 공공성을 중시한다는 통념은 엄밀히 말하면 문재인정부에만 해당된다. 원숙연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15일 국민일보 주최로 열린 2022 국민공공정책포럼에서 “부채 과다, 방만 경영 등의 공공기관 비효율성은 오히려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공공 개혁을 등한시하면 서민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공공성을 명분으로 문재인정부가 빚더미에 오른 한전의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억누른 게 올해부터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공공 개혁은 정권 색깔이 아닌 리더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만큼 어느 분야보다 저항하는 부류가 많고 다양하다. 특히나 고질적 민영화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국민공공정책포럼은 ‘경쟁 체제를 도입하라’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을 추진하라’ ‘공공기관 및 부처에 자율과 책무를 부여하라’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합리적인 방안이어서 정부가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공공의 가장 큰 적은 좌도 우도 아닌 게으르고 철학 없는 정부와 지도자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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