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대통령 기록물’ 설왕설래

국민일보

[한마당] ‘대통령 기록물’ 설왕설래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2-06-18 04:10

괴짜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가의 역사나 다름없는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자세도 독특했다. 그는 브리핑 자료, 메모, 편지를 자주 찢거나 심지어 화장실 변기 안에 버렸다. “법 위반”이라고 비서들이 얘기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퇴임 후에는 김정은 북한 총비서로부터 받은 친서를 사저로 들고 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TV 토크쇼에서 “민감한 서류를 버린다면, 집무실 화장실과 사적 화장실 중 어디를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트럼프에게 전화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기록물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때는 불과 15년 전인 2007년부터다. 노무현정부가 그해 4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면서 대통령기록관을 세우고 청와대 각종 자료를 이관했다. 트럼프처럼 심하지는 않더라도 최고 권력자와 권력 기관의 민낯을 담은 기록들인 만큼 이를 둘러싼 논란도 없지 않다.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든 노 전 대통령은 정작 퇴임 후 ‘기록물 무단 반출’ 의혹을 받았다. 그의 사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2013년에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의 중심에 섰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 해경이 16일 해당 공무원의 자진 월북 판단을 뒤집었다. 문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힐 청와대 자료가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15년간 ‘봉인’된다는 점이다. 이를 해제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나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가 필요하다. 대통령 기록물이 영장 발부를 통해 공개된 건 위에 언급한 노 전 대통령 관련 사건 2건과 2017년에 이뤄진 ‘세월호 참사 청와대 보고 시점 의혹’뿐이다. 문재인정부는 총 1116만건의 대통령 기록물을 남겼는데 이중 최장 30년까지 열람이 제한된 지정기록물이 39만건으로 역대 가장 많다. 기록물 관리가 정권 치부를 가리는 수단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서해 공무원 건은 정쟁이 아닌 국민의 비참한 죽음에 관한 것이기에 법원까지 가지 않고 국회에서 공개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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