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연천군 농촌기본소득 실험을 반기며

국민일보

[손영옥의 컬처 아이] 연천군 농촌기본소득 실험을 반기며

입력 2022-06-23 04:02

지난해 11월 국민일보 연중 기획 ‘DMZ, 희망의 사람들’ 취재 차 민통선 마을인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에 갔을 때였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천연기념물 두루미가 취재의 대상이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이곳이 역설적으로 사람을 겁내는 두루미에게는 낙원이 됐기 때문이다.

그 민통선 마을에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일었다. 유일한 ‘두루미 관람 포인트’인 망제여울 근처에 ‘포토 하우스’가 생겼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끌어들여 마을 수입을 올리려는 시도였다. 겨울 철새인 두루미는 한 해 전에는 못 보던 인공 지형물이 보이자 잔뜩 겁먹고 가까이 오지 않았다. 600㎜ 망원 렌즈로도 두루미 떼를 포착하는 데 실패한 우리는 급히 철원 쪽을 섭외해야 했다. 함께 갔던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백승광 대표는 “주민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두루미 생태 보존에는 더 좋다. 그게 미래에는 연천군의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연천군에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본소득이야말로 두루미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만들어줄 거라는 확신에서였다.

연천군은 비무장지대(DMZ)에 면한 접경지역이다. 접경지역은 휴전 이후 70여 년 동안 국가안보를 이유로 여러 규제에 묶여 개발과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았다. 각종 군사훈련과 사격장·헬기장 소음이 일상을 지배했다. 대낮에도 포 소리가 펑펑 터지는 접경지역에 투자가 이뤄질 리 없었다. 접경지역 10개 시·군 가운데서도 연천은 특히 상황이 나빠 보였다. 강원도 철원군이 궁예가 후고구려 도읍으로 정할 정도로 넓은 평야가 있고 한탄강 주상절리 절경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과 비교가 됐다.

연천군이 지역 소멸의 위기에 놓인 걸 피부로 절감한 것은 연천읍 신망리를 가봤을 때였다. 50년 전 지은 노후한 주택이 그대로 있었다. 흉가도 곳곳에 있었다. 화장실이 급해 식당에 들렀는데, 주인이 알려준 화장실은 놀랍게도 ‘푸세식’이었다. 40여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나 경험했던 추억 속 재래식 화장실이 국내 기술만으로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동시대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건 비극이다.

그 연천군의 청산면에서 세계 초유의 ‘농촌기본소득’ 실험이 시작됐다. 농민에게만 주는 농민기본소득과 달리 농촌기본소득은 특정 지역에 거주하면 직업과 상관없이 전 주민에게 지급된다. 경기도와 연천군은 청산면 주민 3452명에게 지난달 30일 3∼4월분에 해당하는 농촌기본소득 10억여원(1인당 1개월치 15만원)을 지역화폐로 나눠줬다.

경기도는 도내에서 인구 소멸 위험도가 높은 면(인구소멸지수 0.5 이하)이면서 전국의 면 단위 평균 인구수(4167명)보다 낮은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사업 대상 지역을 공모했고, 최종적으로 청산면을 확정했다. 도는 5년간의 사업 시행 기간 중 3년 차에 중간평가를 실시해 효과가 입증되면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책 효과는 벌써 입증되고 있다. 청산면 인구는 지난해 말 전국 평균보다 한참 아래인 3895명이었으나 시범사업 도입 후인 지난 5월 30일 기준 4172명으로 277명 증가했다. 무려 7.1%의 증가율이다. 제2도시 부산도 인구가 줄고 있는 마당이다. 그러니 극장은커녕 약국 하나 없는 청산면에 인구가 유입된 건 기적이다. 농촌기본소득 도입에 앞장섰던 전 연천군의회 부의장 서희정씨는 “시범사업이 시행된 이후 청산면에 이사 와서 장사라도 해야겠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며 정책 효과를 낙관했다. 농촌기본소득은 ‘기본소득’ 전도사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시절에 기획됐다고 한다. 농촌기본소득이 탈출구를 찾기 힘든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기적의 카드’가 됐으면 좋겠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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