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전략가에서 믿음의 장로로… “기독 간부 양성·해군 복음화에 힘쓸 것”

국민일보

해양전략가에서 믿음의 장로로… “기독 간부 양성·해군 복음화에 힘쓸 것”

천정수 전 국군 사이버작전사령관

입력 2022-06-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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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천정수(왼쪽) 장로는 전역 한 달 전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고 천순조 육군 일등중사)를 대신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천 장로는 아버지를 이어 해군 장교로 임관해 군인의 길을 걸었고 천 장로의 아들인 천은택씨도 2019년부터 3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를 마쳐 병역 명문가의 전통을 이었다. 연합뉴스

단정한 머리와 꼿꼿한 허리, 점잖은 몸가짐. 천정수 전 국군 사이버작전사령관은 여전히 해군 신사였다. 지난 16일 경남 진해에서 만난 천 전 사령관은 전역한 지 2년이 돼가지만 온통 해군 생각뿐이었다. 해군진해교회 장로로서 어떻게 해군 복음화를 추진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자주 이사를 했던 천 장로는 중학생 때 새로 이사한 집 바로 앞 진해명동교회에 출석하며 처음 하나님을 만났다. 청소년 시절 교회는 안식처였고 하나님은 해군사관학교로 그를 인도하셨다. 생도 2년 차에 그에게 첫 시련이 찾아왔다. 3사 체전 준비 때문이었다. 럭비 선수로 선발된 그는 고된 체력 훈련 때문에 퇴교를 고민했지만 기도로 버텼다. 그는 이사야 41장 10절, 여호수아 3장 말씀을 묵상하며 “맞서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알게 하셨다”고 했다.

병과 선택 문제로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임관 2년 차에 전투 병과로 남을지 선택해야 했다. 고민은 깊지 않았다. 생도 2년 차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했다. 하나님은 이때 그에게 인생 비전을 제시했다. “해양전략가가 돼 진정한 군인이 되고, 장로가 돼 믿음의 사역에 앞장서라는 명령이었어요.”

소령 때 국방대를 다니며 교회에서 성도 5대 사명(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 매일 새벽기도, 매일 성경 읽기, 1년에 1명 전도)을 평생 지켜야 할 자신과의 약속으로 정했다. 그 후 천 장로는 청와대, 안양함장을 거쳐 제독으로 진급했고 집사 직분도 받았다.

천안함 피격과 세월호 침몰 앞에 천 장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근무했다. 2011년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에서 대령으로 근무할 때 천안함 피격 사건을 마주하며 해군 전력과 전략, 함정 체계를 다시 세웠다. 2014년 5성분전단장 시절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해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4개월간 구조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지난 3월 해군사관학교 크리스천 생도들과 손원일선교센터 임원들이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줌 화면 캡처

순항훈련전단장 시절 그는 ‘무빙 처치’ 사역을 실천했다. 그는 “항해 중 예배는 당연했고 군종참모를 사관 회의에 참석시켜 생도들이 해외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1함대사령관, 사이버작전사령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전역하면서 서울 해군중앙교회 장로가 된 천 장로는 생도 때 세웠던 기독인으로서 목표를 이뤘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천 장로는 전역 후 더 바쁘게 살고 있다. 해군 기독 간부 공동체인 손원일선교센터장으로, 재료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한국해양대 교수로서의 삶이다. 올 2월 해양대에서 해양군사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인생의 비전 두 가지를 모두 이뤘다.

손원일선교센터는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센터에는 손원일 제독 기념관, 해군 선교 70년사와 더불어 60여명의 간부가 살 수 있는 기숙사와 예배실이 들어선다. 입주 간부는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며 한 명의 사역자로 성장할 수 있다.

천 장로는 “센터에서 올바른 신앙인으로 성장한 이들이 각 근무지에서 예배를 인솔하며 무빙 처치 사역을 펼치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간부 비율이 60%를 웃돌고 함정 출동 시에는 인솔자가 없으면 예배가 아예 중단되기 때문에 기독 간부를 양성해 해군 복음화를 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해=신지호 기자 p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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