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배 위에서

국민일보

[빛과 소금] 배 위에서

박재찬 종교부 차장

입력 2022-06-25 04:06

1985년 11월 14일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명 87호’가 남중국 공해상을 지날 때였다. 전제용 선장은 바다 한복판에서 작은 목선을 발견했다. 베트남인들로 가득찬 ‘보트 피플’ 어선이었다. 당시 베트남 패망으로 수많은 난민이 남중국해로 탈출했지만 대부분 선박은 이들을 외면했다.

전 선장은 이들을 구조해도 되는지 한국에 있는 본사에 문의했다.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회사 지시를 거부하고 배를 돌려 난민 96명을 전원 구조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회사에서 해고됐고, 선장 면허도 정지됐다. 아내와 함께 궂은일을 해가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반면 그가 살려낸 난민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새 삶을 이어갔다. 전 선장은 2019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내린 고귀한 결단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1735년 가을 영국을 출발한 시몬즈호는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배에는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타고 있었다. 선교를 위해 미국 조지아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곳저곳을 경유하면서 4개월 넘게 이어진 항해 기간 시몬즈호는 여러 번 뒤집힐 뻔했다. 폭풍우에 바닷물이 객실 창을 부수는가 하면 돛대까지 부러졌다.

당시 웨슬리가 쓴 일기장엔 죽음의 공포와 연약한 믿음의 고백이 드러난다. “나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죽지 않으려고 안달을 했기 때문이다.”(1736년 1월 23일)

그러면서 그는 함께 배에 타고 있던 모라비안(Moravian)들을 눈여겨봤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독일로 이주한 보헤미아(현 체코) 개신교인이었다.

거센 폭풍우에 돛대가 부러지고 배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승객을 돌보고 있었다.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는 영국인들과는 딴판이었다. 나중에 웨슬리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았습니까.” 모라비안이 답했다. “아니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시 경험은 웨슬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배 위에서 믿음의 진수를 목격한 것이다.

전 선장의 선택과 웨슬리의 경험이 값진 이유가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전 선장은 목선에 매달려 있는 고귀한 생명에 마음이 꽂혔고, 웨슬리는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믿음의 소중함을 품었다.

소중한 가치는 인생이라는 배 위에서도 종종 마주한다. 꼭 50년 전인 1972년 6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꼽히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1931~2012)의 인생에 있어서 이 사건은 허리케인급 시련이었다.

그는 닉슨에 대한 외부 공격을 방어하다가 결국 철창신세를 졌다. 침몰하는 인생에서 그를 건져낸 구명보트는 복음이었다. 출소 이후 콜슨은 목회자로 변신해 감옥의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악랄한 천재’라는 그의 별명은 어느새 ‘재소자들의 아버지’로 바뀌었다. 인생의 배 위에서 찾은 복음의 가치 덕분이다.

지난 19일 향년 98세로 하늘나라로 떠난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는 생전에 낮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 데 열심이었다. 말년에는 본인의 자택까지 장신대에 내놓는 등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98년 인생을 빈 배로 만들고 떠난 것이다.

소천 두 달 전, 장신대 후배들에게 전한 마지막 강의에서 그는 “내가 예수라는 나무에 잘 붙어있는지 늘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행함과 가르침이 나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언행일치로 믿음의 본을 보이라는 권면이다. 인생의 선상 생활 철칙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고 떠난 것 같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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