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과로 사회’ 회귀는 안 된다

국민일보

[한승주 칼럼] ‘과로 사회’ 회귀는 안 된다

입력 2022-06-29 04:20

‘판교 등대’ 시절 야근 밥 먹듯 노동자 건강·삶의 질은 무시
주 52시간제는 노동자 보호법
바쁠 때 일 몰아서 하자는 노동개혁은 가야 할 방향이나
최악 막을 제어장치는 있어야
노동시간 유연화는 삶과 직결 사회적 합의 거쳐 신중히 해야

경기도 판교와 서울 구로에 있는 게임회사들은 한때 ‘판교의 등대’ ‘구로의 오징어잡이 배’로 불렸다. 깜깜한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모습이 어두운 바다에 빛을 밝힌 등대나 배 같아서이다. 그만큼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시절이었다. ‘크런치 모드’라는 말이 있다. 게임 회사에서 신제품 출시 등을 앞두고 몇 달간 밤샘 근무를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은 무시되곤 했다. 급기야 대형 게임업체에서 그렇게 일하던 20대 근로자가 과로로 숨졌다. 이 죽음은 크런치 모드로 인한 사망이 산업 재해로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됐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이런 아픔을 겪으며 만들어졌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최대 주 52시간만 일을 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기본 40시간에 노사합의가 있으면 최대 12시간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 이 제도는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됐다. 순차적으로 적용돼 지난해 7월에야 5~49인 사업장까지 도입됐다. 우리 사회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 게 얼마 안 됐다는 얘기다.

주 52시간제는 경영계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운 제도다. 일이 몰리는 기간에도 근로자에게 더 이상 일을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러니 주 52시간제를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유연하게 바꿔 바쁠 땐 더 일하고, 한가할 땐 쉬는 방향으로 개편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로 떠오른 ‘노동시간 유연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1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가 포함됐다. 지난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잇달아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운을 뗀 것도 이런 이유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장관 발표 하루 만에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났지만, 이 정부에서 가게 될 방향은 틀림없는 듯하다.

사업장마다 사정이 있고, 노사합의로 노동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자는 데 이견은 없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보자. 디테일은 다르지만 초과노동을 주 단위보다 더 긴 기간을 기준 삼아 운용하고 있다. 노사합의를 전제로 탄력적인 노동시간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런데 우리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단체협약 적용 노동자가 각각 100%, 98%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4.2%(2020년 기준)에 불과하다. 회사가 시키면 무리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최악의 상태를 제어할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노동 개혁 방향대로 한 달 단위로 조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 달은 평균 4.343주다. 이를 토대로 단순 계산하면 기본 40시간에 초과근무 52시간(12x4.343), 주 최대 92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까지 일을 시키는 사업장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까지 일을 강요하는 곳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퇴근 후 출근까지 11시간 휴식 의무화를 내놨지만, 주 5일 꼬박 야근은 그 자체로 과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노동개혁은 우리 삶의 방식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이제야 겨우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고 있다. 주 52시간제의 장점을 허물려면 탄탄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죽음이 있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았다.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고, 과로사한 노동자들을 보며 주 52시간제도가 생겼다.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바람이 살짝 불고 지나갔을 뿐인데도, 노조가 없는 영세 게임업체 종사자들은 다시 크런치 모드가 올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불안을 모르는 척 눈 감아서는 안 된다. 대책 없는 과로 사회로의 회귀는 안 될 일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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