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이제 축복 주시려 하는데…” 목사님 설교에 극단 선택 접어

국민일보

[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이제 축복 주시려 하는데…” 목사님 설교에 극단 선택 접어

국내 도장업계 선도 풍진 대표이사 김종복 장로

입력 2022-07-02 03:08 수정 2022-07-0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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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진 대표이사 김종복 장로가 지난 21일 경기도 시흥 스마트허브병원 이사장 접견실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지난 40년 동안 기업을 꾸려오면서 지켜온 경영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흥=신석현 포토그래퍼

㈜풍진 대표이사 김종복(65·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가 이사장으로 있는 의료법인 풍진의료재단 접견실 한쪽 벽에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있다. 고(故)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생전 즐겨 부르짖던 긍정의 믿음 선포다.

지난 21일 경기도 시흥시 스마트허브병원 내에 있는 접견실에서 김 장로를 만났다. 찬송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접견실에 들어서며 그곳에 걸린 액자가 인상 깊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 장로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제게 있어 여의도순복음교회 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은 제게 영적인 스승님과 다름없죠”라고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1982년 풍진화학으로 시작한 김 장로의 회사는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알루미늄 성형제품이나 건축재, 불소수지 분체 도장 전문기업이다. 원료 소실과 환경오염도 줄이는 독보적인 인쇄기법을 보유해 업계를 선도한다.

김 장로는 기업 경영가로서 정부 구조고도화사업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위대한 창의·융합 글로벌 리더십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흥시로부터 성실납세자 표창도 받았다. 2018년 3월에는 경기도 시화공단 인근 근로자와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재활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풍진의료재단을 세웠다. 그해 7월 100병상을 갖춘 4290㎡(1300평) 규모의 재활전문병원 스마트허브병원도 개원했다. 김 장로는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이웃을 맡겼던 주막집처럼 ‘믿음 소망 사랑’이란 사훈을 바탕으로 소외된 자들을 치료해주고 기도해주며 동행해주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현재는 170여개 병상까지 확대됐다. 재활의학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한·양방 의료진이 협진한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1월 27일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 대한민국언론인연합회 등이 주관한 ‘2022년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 시상식에서 의료서비스혁신 부문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화려한 수상 이력을 쌓기까지 김 장로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마디로 ‘자수성가’다. 김 장로는 충북 청원군에 살던 열한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부모의 손길이 아쉬울 어린 나이에 하늘의 별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김 장로는 “광야 길을 걷던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을 보며 하나님 주신 꿈을 꿨던 것처럼 당시 어렸던 저도 열심히 기술을 배워 성공부터 하리라 다짐했다”며 “공부와 여행은 성공한 다음에 하리라 마음먹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 영등포역 인근 도장 전문공장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열네살 나이에 객지 생활을 시작한 김 장로가 지금까지 페인트 도색, 도장 업계에 몸담게 된 시작점이었다. 1981년 무렵 다니던 업체 공장이 문을 닫게 되자 직접 회사를 차리고 일을 이어받았다. 경기도 용인의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서는 도장 관련 일을 하도급받았다. 20대 어린 나이에 시작한 사업은 쉽지 않았다. 당시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던 500만원이 당장 급해 대출을 받았지만, 이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담감에 죽음까지 생각했다. 당시 가입했던 생명보험이 생각났다. 사고로 죽으면 2000만원을 준다고 했다. 그 주 일요일에 등산을 갔다 사고가 난 것처럼 하면 되겠다 싶었다. 사전 답사까지 마치고 일주일 동안 그날만 기다리는데 시간이 너무 안 갔다. 마음은 답답한데 갈 데는 없고 해서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금요 철야 예배를 찾았다.

김 장로는 “당시 조 목사님이 설교하시며 나와 같은 처지의 사업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며 “하나님이 이제 축복을 주려는데 지금 죽으면 어떻게 복을 받느냐는 말이 와 닿았고,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며 다 해결해주실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의 신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과 지혜, 나를 한결같이 지켜주시는 주님만 의지하자”고 되뇌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사업가로 바쁜 삶을 살던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교과서였고, 조 목사와 이 목사의 설교는 스승의 가르침과도 같았다. 믿었던 직원의 배신과 모함으로 법정 소송까지 갈 때도, 사업가로서 세상의 유혹과 마주할 때도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의 법을 다 지키고, 거짓 술수 부리지 말고 정직하며 신뢰를 우선시하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그게 옳은 길임을 매번 깨달았다. 김 장로는 “광야의 땡볕에서도, 인간의 방법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도 결국엔 늦은 비를 허락하셔서 곡식을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매번 느꼈다”고 고백했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김 장로가 품은 소명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일터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예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며 증명하는 일이다. 김 장로는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까도 항상 고민한다”며 “특히 임직원 자녀들이 해외 어디라도 나가서 행복을 배워올 수 있다면, 복음을 깨닫고 이를 증명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장로는 과거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의 ‘기도 굴’에 처음 들어갔다가 만난 하나님을 전했다.

“당시 하나님이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1분 만에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영등포 공장 시절과 당시 지었던 죄들을 보여주시며 그때도 ‘내가 널 지켜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물, 생명과 같은 말씀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 삶 전체를 예배로 드려야 한다는 당시 깨달음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시흥=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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