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삼 (5) 하나님이 보내준 의문의 합격증… 불합격이 합격으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이종삼 (5) 하나님이 보내준 의문의 합격증… 불합격이 합격으로

합격 점수 미달임에도 받게 된 합격증
채점 안 된 주관식 문제 답안지가 원인
교수·직원들 사과-회의 끝에 입학 허락

입력 2022-07-0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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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삼(왼쪽 두 번째) 목사가 1975년 영남신학교 부산신학사 1학년 때 친구들과 소풍을 가던 중 경남 양산 물금역 선로 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삼이라는 합격자는 없는데요. 합격증을 받았다고요?”

1982년 2월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목회연구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는데 입학처에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합격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받은 합격증은 무엇이란 말인가.

“집으로 합격증을 보낼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불합격이라고 하는 건 무슨 말이고. 이게 말이 됩니꺼?”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한 직원이 합격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집에 두고 온 합격증을 당장 보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집에 있었다. 합격 사실을 이미 확인했는데 그걸 들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합격증이 손에 없으니 더 따질 수도 없었다. 잠시 물러서 거제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산역까지 합격증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 뒤 서둘러 부산역으로 갔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문자로 주고받아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인편으로 주고받아야 했다.

반나절이 넘도록 하행선 열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내려갔다. 역에서 아버지를 만나 합격증을 받아 들고 밤새 서울역을 향해 올라왔다. 서울역에 내려서도 장신대까지는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입학처 직원에게 학교가 발급한 합격증을 들이밀었다.

합격증을 본 직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허둥지둥하며 합격자 명부를 찾아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1초가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초조한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그러다 학생처장이던 박창환 교수님이 날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생, 지금 점수를 보니 시험을 너무 못 봤네. 자네 수고 많이 했는데 사정을 봐줄 수가 없겠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객관식과 주관식 문제를 모두 다 풀었다. 그랬는데도 ‘시험을 너무 못 봤다’고 하는 건 채점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교수님, 제가 주관식 답을 쓴 답안지를 한 번만 더 확인할 수 있습니꺼.”

박 교수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직원을 불러 내 답안지를 가져오라고 지시하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답안지를 들고 오는 직원의 표정이 복잡 미묘한 게 아닌가. “교수님, 글쎄….” 알고 보니 객관식 답안지만 채점한 것이었다. 주관식 답안지 채점은 돼 있지 않았다.

총점만 보니 시험을 너무 못 본 게 맞았지만 채점을 하지 않은 주관식 답안지까지 채점하니 점수가 높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교수님과 직원들은 내게 사과하셨다. 그리고 회의 끝에 입학을 허락해 주셨다.

마지막 남는 의문은 하나였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합격증을 보냈단 말인가. 직원들은 그 부분이 의아하다고 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하나님이 누군가의 손을 빌려 보내 주신 거구나.’

불합격이 합격으로 변한 일은 두고두고 간증 거리로 남았다. “오직 주님께 영광.”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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