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35번의 ‘자유’와 관치

국민일보

[세상만사] 35번의 ‘자유’와 관치

권기석 경제부 차장

입력 2022-07-01 04:03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말한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는데 얼마 전 힌트 하나를 얻었다. 김병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은 국민일보 공공정책포럼 기조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는 ‘국가주의’의 반대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의 확대는 말 그대로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더 많이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자유,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개념이었는데, 대통령의 자유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것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수준의 탈국가화, 탈중앙화를 뜻한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현실은 취임사 및 김 위원장 해석과 다르다. 자유의 확대가 아닌 국가주의가 발휘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경영자총협회 간담회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임금 인상이 다시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걱정해서 한 말이겠지만 국가가 민간의 일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모양새다. 임금은 기업과 노동자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진다. 개별 기업과 노조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국가가 일방적으로 높여라 낮춰라 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이야기를 사석에서 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공개 석상에서 발언이 나왔다. 부총리는 오랫동안 공직에 있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관료 집단의 대표다. 공무원들이 민간과 기업을 어떻게 여기는지 이번 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국가주의는 “은행의 이익 추구가 지나치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그 역시 시중은행장과의 간담회라는 공식 석상에서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부터 은행의 대출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장 원리가 아닌 감독기관 기관장의 말에 의해 금리가 움직인 것이다. 금감원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고 하지만 ‘관치’로 볼 수밖에 없다.

민간과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 관치는 효율적인 성장 수단이었을 수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일사불란함은 고속 성장에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지금은 그런 국가의 역할이 오히려 민간의 성장을 방해할 때가 많다. 국가는 나름의 목적이 있을지 몰라도 시장 원리를 거스르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 사례는 여럿이다. 현 정권이 비판하는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그중 하나다. 국가는 안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일을 추진했지만 경제성을 심각하게 훼손해 막대한 적자를 남겼다.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 주문은 실현이 될지 의문이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관치가 나쁜 또 다른 이유는 유착이 생기기 때문이다. 관치는 다른 여러 관계와 마찬가지로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 관계다. 기업, 금융기관이 협조하면 국가는 모종의 빚이 생긴다. 그것은 시장에서의 보호로 나타날 때가 많다. 경쟁에서 밀려 퇴출당할 위기에 몰려도 살아남을 길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이 다스리는 환경에서 기업들은 시장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환경에선 새로운 도전자의 시장 진입이 어렵다. 국가와 가까워진 기존 기업이 자리를 잘 비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랜 기간 국가의 개입으로 흐트러졌던 시장 경제를 제대로 해보자는 의미에서 자유의 확대라면 해볼 만하다. 다만 말뿐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취임사의 ‘자유 확대’를 실현하려면 국가는 힘을 한참 더 빼고 민간을 존중해야 한다. 임금이나 금리처럼 시장에서 결정될 일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권기석 경제부 차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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