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경찰 독립’은 원래 없는 말이다

국민일보

[고승욱 칼럼] ‘경찰 독립’은 원래 없는 말이다

입력 2022-07-06 04:20

공권력의 상징 경찰권은 법에
근거한 민주적 통제가 원칙

검사의 수사지휘권·민정수석
폐지 공백 어떻게 메워야 하나

지금은 30년 넘게 변칙 운영된
경찰 제도 바로잡을 좋은 기회
경찰관들이 제복을 입고 경찰청 앞에서 단체로 삭발을 했다. 지금은 뉴욕 경찰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했다거나 파리 경찰이 시위진압 수당을 달라며 노란조끼를 입고 시위에 나섰다는 뉴스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우리 경찰도 필요하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위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구호가 애매하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반대,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 국가·자치경찰 이원화를 요구하면서 ‘경찰 독립’이라고 했다. 의문이다. 누구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행안부에 경찰국이 생기면 경찰이 정권에 예속될 우려가 있으니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한 듯한데 와닿지 않는다. 검찰과 다툴 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은 있지만 이제 와서 정치적 중립도 아니고, 앞뒤 수식어까지 모두 뺀 독립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공권력은 국가가 국민에게 강제하는 힘이다. 경제활동은 물론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심지어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이다. 헌법 37조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헌법에 명시됐다는 것은 우리 모두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동의했다는 뜻이다. 경찰권은 여기서 출발한다. 포괄적으로는 질서유지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법률적 힘을 뜻하지만 대개 법을 집행하는 경찰 조직에 속한 공무원이 행사하는 강제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인간적 고려가 조금도 포함돼 있지 않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힘인데, 한없이 잔인하다.

그렇기에 경찰권은 철저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 힘을 어떻게 생성하고 누가 어디까지 행사하는지를 명확히 정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은 인권과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 식민 통치의 말초적 수단은 ‘순사’였다. 이승만 정권은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 일제시대 경찰의 제도·인력을 이어받아 부족한 정통성에서 비롯된 공백을 억지로 메웠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은 공안 통치에 나서 경찰은 ‘짭새’라는 모욕적 말을 들어야 했다. 때문에 우리의 민주화는 경찰권이 부도덕한 집권세력을 위해 사용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갖추는 데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조차 경찰 독립이라는 말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근대국가 형성에 경찰 독립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인사와 감사 분야를 실질적으로 자체 해결하고, 수사·치안 조직을 동시에 거느리며 정보력까지 장악한 경찰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억지 논리가 그럴 듯하게 유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 준비 없이 밀어붙인 ‘검수완박’ 법안이 한 원인이다. 검사의 수사 지휘권이 사라지면서 공정한 수사에 의심이 생겼고 피해자 구제에 헛점이 보이는데 대책이 없다. 윤석열정부가 민정수석비서관을 갑자기 없앤 것은 또 다른 원인이다. 치안비서관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 파견 경찰관들이 민정수석을 매개로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는데, 30년 넘은 이 시스템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황급히 경찰국을 만들어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 ‘짭새의 시대’를 잊지 않고 있다. 잘못 운용된 것을 드디어 바로잡는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항변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경찰의 사명과 명예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자 주변을 맴돌며 비정상적 제도에 30년 넘게 안주한 경찰 수뇌부의 무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모든 민주적 통제를 벗겠다는 억지가 경찰 내부에서 나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지난 정부, 현 정부, 그 둘을 모두 비난하는 경찰까지 지금의 불편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남을 탓할 자격이 모두에게 없으니 해법은 하나다. 모여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경찰권의 민주적 통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는 점이다. 자치경찰 실행 방안이 명확치 않은 것을 제외하면 여야 모두 오랫동안 연구했고,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수사권 보장을 놓고 더는 싸우지 않을 제도를 마련할 기회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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