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MZ 악동’ 이준석 이대로 사라지기엔…

국민일보

[여의춘추] ‘MZ 악동’ 이준석 이대로 사라지기엔…

입력 2022-07-15 04:06

지난 10일 끝난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준우승자 닉 키리오스는 실력보다는 기행으로 더 유명하다. 상대 선수는 물론 심판, 관중과 수시로 충돌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관중에 침을 뱉고 심판에 격렬히 항의해 1800여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13년 프로 입문 이래 통산 벌금만 우리 돈으로 11억원에 이른다. 1986~2000년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뛴 데니스 로드맨은 7년 연속 리바운드 1위를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타다. 하지만 인성은 별로였다. 팀 연습 무단 지각, 팀 이탈에 상대 선수와의 주먹다짐은 예사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절 라이벌 시카고 불스의 스카티 피펜 턱을 강타해 병원 신세를 지게 했다. 기괴한 머리 염색, 흉측한 전신 문신, 여장 행세, 무분별한 여성 편력. 소속 팀들은 그를 어떻게든 쫓아내려 했다. 둘은 각각 21세기와 20세기 대표 스포츠 악동으로 불린다.

지금 한국에서 고집불통, 악동으로 불리는 유명인사는 누가 있을까. 선택이 쉽지 않다면 ‘싸가지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넣어 보자. 아마 한 명이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다. 지난해 6월 최초의 30대 제1 야당 대표가 된 뒤 1년여간 이 대표는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뱉은 말 한 마디, SNS 한 줄은 항상 발칙하고 도발적이었다. 보수 정당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과유불급이었다. 필요 이상의 분란을 일으켰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국내산 육우에 비유하고 두 번의 당무 거부를 통해 후보를 길들였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의 악동 기질에 질린 보수세력은 “두고 보자”고 이를 갈았다. 대선, 지방선거를 잇따라 승리한 대표에게 지난 8일 당 윤리위원회는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레드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말 한 단체의 성상납 폭로가 발단이었으나 사법적 결과도 나오지 않은 점에 비춰 윤핵관 등 보수층 반감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치 선거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감정적 대응은 당과 정권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당 윤리위 결정 후 급격히 추락했고 특히 20대 지지율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았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20대가 최근 3차례 연속 전국 단위별 선거에서 보수 정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 초유의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변심은 의미심장하다. 이준석 요인을 제외하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정이야 어떻든 대선 당시 그가 주도했던 서진 정책, 쇼츠 공약, 기발한 SNS 운동은 기존 보수당원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아이디어들이었다. 외연 확장의 공은 무시됐고 과만 도드라졌다.

대안이 있거나 당의 사고 기능이 유연하다면 이준석 부재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터다. 그를 제외하고 국민의힘 면면을 보자. 과거 새누리당, 자유한국당과 무엇이 다른가. 이준석을 쫓아내자마자 “당 대표실에 대통령 사진을 걸자”는 발언에서 ‘도로 꼴보수’당의 미래만 보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의 당원권 정지 시점에서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장도 당 대표 출마가 불허됐다. 동반 토사구팽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은 대선 때 자당 후보의 득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척박한 청년 정치 현실을 볼 때 버르장머리 없다고 싹을 아예 밟는 것은 지나치다.

갈 곳 없던 악동 로드맨을 받아준 곳은 의외로 앙숙이었던 불스였다. 불스의 리더 마이클 조던과 필 잭슨 감독은 “간섭 안 할 테니 경기장에서는 팀 승리만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로드맨이 98년 리그 경기가 한창일 때 라스베이거스로 휴가를 떠나는 돌출 행동을 했지만 팀은 이를 용인했다. 타박과 질책 대신 자율과 책임을 부여받자 실력 발휘를 했다. 불스의 두 번째 스리핏(3회 연속 우승) 주역이었다. 이준석의 철 없는 행동은 문제다. 그러나 기존 보수와 다른 DNA를 가진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잭슨 감독이 로드맨의 일탈을 용인한 데 대해 당시 한 팀원은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코트에서 실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선 야생마의 고삐를 가끔 풀어줘야 하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집권당이 대통령 충성당이나 수구당으로 전락할 바에야 야생마가 뛸 수 있는 당이 낫지 않겠나. 게다가 이준석은 로드맨보다 똑똑하다. 경찰 수사의 허들을 넘는다면 여당이 이준석을 안고 갔으면 싶다. 정치판을 흔든 MZ 악동이 이대로 사라지기엔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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