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아베노믹스와 Y노믹스

국민일보

[여의춘추] 아베노믹스와 Y노믹스

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2-07-19 04:02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우리에겐 참 고약한 정치인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보복성 수출 제한 조치로 한국 산업계가 한때 휘청거렸으니 곱게 봐줄 수가 없다. 그런데 일본에선 성공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8일 선거 유세 중 피격돼 사망하기 전까지 일본 우익의 구심점이자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8년9개월 동안이나 총리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엔 ‘아베노믹스’가 있다. 최근엔 ‘나쁜 엔저(低)’를 부른 정책이란 비판을 받지만 2013년 시행 후 아베 정권 지지율이 치솟을 정도로 당시엔 각광받았다.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지친 일본 국민에게 아베 정권의 과감한 결단은 20년 이상 지속된 장기 불황을 탈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중앙은행 총재를 교체하는 무리수까지 동원해 돈 풀기에 나섰다. 엔화 가치가 30% 가까이 떨어지자 엔고(高)로 고전하던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반등했고, 주가는 배 가까이 뛰었다. 생산인구 감소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찌 됐든 실업률이 낮아졌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7%대에서 4%대로 내려왔고, 정규직 비중도 높아졌다. 고용이 개선되고 5~6년간 소폭이지만 경제성장이 이어지자 사회도 안정돼 갔다. 범죄율과 자살률도 이 시기에 눈에 띄게 하락했다.

이처럼 아베노믹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비탄에 빠진 일본 국민을 어루만져줬고,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 발판이 됐다. 하지만 구조개혁이나 노동시장 개혁은 손도 대지 못한 탓에 아베노믹스 역시 일본 경제의 장기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경제 기초체력이 약해진 일본 경제의 급격한 추락만 막은 단기 대증요법에 그쳤던 셈이다.

아베노믹스는 이제 폐기될 기로에 놓여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참고해야 할 점은 차고 넘친다. 특히 집권 초기 지지율 급락 상황에 맞닥뜨린 윤석열정부엔 더 그렇다. 인사 논란 등이 지지율 급락 원인이긴 하지만 결국 향후 지지율 향배는 경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 정권 역시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 재집권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윤석열정부가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단초가 된 일본 장기 불황 초기와 지금의 한국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생산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가계부채는 당시 일본보다 더 심각한 지경이다. 따라서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급격한 자산 붕괴를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이 서서히 빠지도록 관리하는 한편 고용과 실질임금 수준을 높여 자산과 소득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은 고용의 주체인 기업이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의 일본처럼 자산 가격 급락 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줄도산하면 그때는 정말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감세와 규제 완화를 내세운 윤석열정부의 경제정책 ‘Y노믹스’는 그 방향성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물간 ‘낙수효과론’을 다시 들고 나왔냐는 지적을 듣지 않게 하려면 고비마다 정확한 상황 판단과 과감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기업 실적 개선이 투자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게끔 유도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시 일본 얘기로 돌아가면 아베노믹스 시행 당시 아베 정권은 기업에 임금 인상을 설득하고 때로는 강요했다. 기업 실적 개선이 자체 생산성 향상보다 외부 환경 변화, 즉 양적완화에 따른 엔저 영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고용과 임금 인상에 써야 한다고 경제단체들을 압박한 것이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방송인터뷰에서 “당시 만난 일본 증권 관계자들은 ‘기업에 자꾸 임금을 올리라고 하는 아베야말로 공산주의자 아니냐’는 농담을 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인구 감소가 시작된 한국은 일본처럼 경제 체력이 지속해서 약화할 수밖에 없다. 외부 변수에 따른 충격과 후유증도 이전보다 더 심해질 수 있다. 정교한 정책 역량이 한층 더 요구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다만 서둘면 안 된다. 급한 마음에 ‘초이노믹스’처럼 부동산 대출 규제를 푸는 경기부양책을 썼다가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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