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기부 확산 위해선 유언장 쓰는 문화부터 정착돼야”

국민일보

“유산 기부 확산 위해선 유언장 쓰는 문화부터 정착돼야”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 <4>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원혜영 전 국회의원

입력 2022-07-21 03:04 수정 2022-07-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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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중구 웰다잉문화운동 사무실에서 만난 원혜영 대표. 원 대표는 “유언장을 작성해야 유산기부를 고민해볼 수 있다. 평소 헌금과 십일조를 내는 기독인들이 유산기부를 가장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부천시장 2번, 국회의원 5번을 한 원혜영 전 의원에게 요즘 관심사는 정치가 아니라 ‘죽음’이다. 지난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웰다잉문화운동-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원 대표는 우리 사회에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웰다잉문화운동 사무실에서 원 대표를 만나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지 들었다.

-‘웰다잉문화운동’은 무엇이고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015년 여야 의원들을 모아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한 국회 세미나에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할머니에게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알게 된 이후다. 2016년 1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만들면서 삶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내 삶의 끝이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기 위해선 죽음 이후 이뤄지는 결정들에 미리 정리하고 결정해 놓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재산을 어떻게 정리할지, 유산기부를 할지,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장기 기증을 할지, 후견인을 정할지, 모두 내가 결정해야 할 일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이, 가족이, 법이 결정하고 가족 간 다툼이 일어난다.”

-대표님은 웰다잉하고 계신가.

“내 뜻과 계획에 따라 정치 인생을 그만뒀다.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은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없다.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스캔들로 끝나는데, 감사하게도 나는 내 뜻대로 정치를 시작했고 내 뜻대로 정치를 마무리했다. 유언장을 작성했고 죽기 전 선택해야 할 많은 사안을 결정한 상태다.”

-유언장 쓰기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유언장 쓰는 사람이 인구 절반이 넘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구체적인 통계조차 없다. 미국은 다 쓰니까 나도 쓰는 것이고 우리는 주변 친구나 가족들이 아무도 안 쓰니 나도 안 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집 한 채 달랑 있는데 유언장 왜 쓰나’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요즘 집 한 채가 비싸면 수십억원이다. 경제 성장이 지금처럼 이뤄지지 않았던 과거엔 자식에게 나눌 재산이 없었고 유언장을 쓸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 베이비부머들은 상당수가 경제 발전과 함께 많은 부를 축적한 세대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어떻게 정리하고 떠날지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부의 가치를 과거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유언장을 안 쓰면 자식들 간 싸움이 난다. 상속 분쟁을 해결하는 길은 유언장을 쓰는 문화를 만들면 된다. 이젠 유언장을 작성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시기가 왔고 인생 황혼기를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나서야 한다.”

-유산기부를 하도록 만드는 유인책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 사회에 화장(火葬) 문화가 보편적인 장례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이제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문화가 정착돼 유산기부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죽음이 임박하면 정리할 것이 많은데 온전한 정신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후에 유언장을 작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평소 유언장을 작성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유언장을 일기처럼 쓸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주는 편지처럼 쓸 수도 있다. 작성하다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써보며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 유언장을 작성하며 삶을 정리하면 자기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유언장을 안 쓰는 상황에 유산기부를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언장 작성 문화가 정착됐을 때 비로소 영국의 ‘레거시 10’처럼 유산기부를 할 때 기부한 금액이 10% 이상이 될 때는 세제 감면을 해주는 다양한 기부 유인책을 생각할 수 있다.”

-기부를 가로막는 요소들에는 무엇이 있나.

“기부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평가하지 못하는 정부와 관료들의 인식 부족을 지적하고 싶다. 기부금 운용 비리는 극히 일부고 절차나 과정에서 불철저함 때문에 생긴 것이다. 정부와 관료들은 여전히 기부를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며 세금 걷어서 하면 되지, 왜 민간인들이 나서서 기부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반감이 많다. 기부금이 많이 모이고 봉사활동이 활성화되는 것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그런 것이 선제 됐을 때 기부를 가로막는 법제 개선도 이어질 수 있다.”

-유산기부를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산의 10%를 자선이나 문화사업 단체에 기부하도록 유도하는 캠페인 ‘레거시10’ 훈련이 가장 잘 된 분들이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이다. 크리스천들은 평소 십일조나 헌금을 하지 않는가. 기독교인들은 생활 속에서 내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을 해왔다. 기독교인들이 유산기부를 가장 잘할 수 있다. 교회에서 유언장을 쓰고 유산기부를 약속하며 교회가 가장 좋은 웰다잉 운동의 현장이 될 수 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며 조금의 유산이라도 내어놓는다면 양이 많고 적든 상관없이,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일보와 월드휴먼브리지가 함께하는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 캠페인은 크리스천들이 앞장서 유언장을 작성하고 유산기부를 결정하도록 해 웰다잉문화 형성을 정착시키는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취재팀 조재현 우정민 PD

박지훈 최경식 신지호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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