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논문 ‘유지(Yuji)’

국민일보

[한마당] 논문 ‘유지(Yuji)’

라동철 논설위원

입력 2022-08-03 04:10

표절은 문학작품, 대중가요와 클래식 음악, 디자인 등 타인의 창작물을 몰래 베끼는 행위다. 다른 사람의 창의력과 노력이 깃든 성과물을 도둑질하는 것이어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계에서도 표절은 대표적인 연구부정행위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논문이 표절로 밝혀지면 논문이 취소되고 부정행위자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재직 중인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학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의 ‘공적’으로 낙인찍힌다. 우리나라도 과거엔 표절에 느슨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흔했지만 지금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의 필수 항목이 됐을 정도로 중대한 부정행위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대학은 표절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책임이 그 어느 곳보다 막중하다. 학문 연구와 교육이 주된 역할인데다 논문을 검증해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표절 의혹이 불거진 논문은 철저하게 검증하고 표절로 확인되면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은 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국민대가 1일 김건희 여사의 2008년 박사학위 논문과 대학원 재학 중 학술지에 게재한 2편 등 3편의 논문이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표절 의혹이 불거진 논문들인데 면죄부를 준 것이다. 해당 박사학위 논문은 언론 기사와 인터넷 블로그 글을 상당 분량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학술지 게재 논문엔 제목을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고는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라고 표기한 논문이 포함돼 있다. 정상적인 검증 과정을 거쳐 통과되고 발표된 논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대는 시효가 지나 조사 대상이 아니라며 버티다 교육부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조사하고는 뒤늦게 이런 결론을 내놨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대의 논문 검증 과정을 검증해야 할 판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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