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금융권 BTS를 바란다면

국민일보

[뉴스룸에서] 금융권 BTS를 바란다면

김경택 경제부 차장

입력 2022-08-08 04:03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금융 규제 혁신의 목표는 BTS와 같은 금융회사가 나올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금산 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데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이 규제를 없애면 은행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나 부동산 관련 업체 등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은행의 비금융회사 출자를 15% 이내로 제한한 은행법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은행의 고객 정보를 금융지주사 계열사 간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금융 규제 혁신의 배경에는 서로 다른 산업이 뒤섞이고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 시대의 변화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라 새로운 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오래된 규제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풀어줘도 괜찮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금융회사는 신뢰가 생명인데, 현재 국내 금융회사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예컨대 우리은행은 직원 한 명이 8년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등 697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직원이 직인 도용에 공문서위조, 허위 공문 발송까지 하면서 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은행 내부의 감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다. 다른 은행 중에서도 믿을 만한 곳을 찾기는 힘들다. KB국민·신한·하나 등을 포함한 지난해 은행권 전체의 횡령·유용 사고는 16건이었다. 사고 금액은 67억6000만원이었다.

최근엔 국내 시중은행에서 모두 53억7000만 달러 규모의 비정상적 외화 송금이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은 가상자산거래소를 거친 외화 송금뿐 아니라 업체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외화 송금 등 수상한 거래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고객 확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은행은 외환 거래 실적을 올리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나사 풀린 금융회사의 모습은 관련 법 규정이 느슨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현재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등은 금융회사 직원이 지켜야 할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엔 1억원 이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하지만 내부통제 기준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장치가 허술하다 보니 내부통제 기준만 세워 놓고 정작 중요한 이행에는 소홀한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금융 사고를 막으려면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내부통제 감독과 책임 여부를 명확하게 법에 명시해 금융지주 회장 등 최고 경영진이 마땅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책임지는 사람의 직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통제 효과는 커질 수 있다. 금융지주사뿐 아니라 금융그룹 전체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내부통제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금융지주사는 은행과 증권, 보험 등 비은행 부문 사업에까지 중요한 정책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에선 ‘지나친 정부 개입이 문제’라며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끊이지 않는 대형 금융 사고를 막으려면 더 강한 규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 당국의 책임도 크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국내 회사를 키우려면 내부통제 시스템을 보완하도록 하고 금융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일부터 신경 써야 한다. 집안 단속 하나 못하면서 글로벌 금융회사를 육성할 수 있을까.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등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당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도 내부통제 기능을 못 갖춘 은행에 선물 보따리만 풀어줄 수는 없다. 음악 산업 규제 같은 걸 없애줘서 BTS가 뜬 건 아니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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