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기억 잃지만 하나님이 선물한 ‘오늘’… 나는 행복합니다

국민일보

갈수록 기억 잃지만 하나님이 선물한 ‘오늘’… 나는 행복합니다

초로기 치매 앓는 김승만 목사

입력 2022-08-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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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만 목사가 지난 7월 방영된 KBS1TV ‘주문을 잊은 음식점 2’에 출연해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KBS 제공

“치매 진단을 받고 멍해졌어요. 왜, 내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생각했죠.”

김승만(60) 목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적절한 단어와 문장이 표현되지 않는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김 목사가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은 1년 전이다. 목회 은퇴 후 아내 최은순(57) 사모와 함께 경남 김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 목사는 어느 순간부터 덧셈, 뺄셈 계산이 되지 않았다. 손님에게 거스름돈 계산을 실수하는 일도 다반사,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 사모가 남편 손을 잡고 병원을 찾았다가 ‘조기 발병 치매(초로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유튜브 더 미션 채널 ‘복음식당’ 콘텐츠 촬영 현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복음식당은 오픈 키친에 초대된 손님에게 임형규(라이트하우스 서울숲교회) 목사가 만든 요리를 먹으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사랑과 희망, 위로를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최 사모는 “남편이 치매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제발 아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결과를 들은 뒤에는 ‘역시 맞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많이 무너졌다”고 고백했다. 20대의 두 딸은 아빠를 위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더 미션 ‘복음식당’에 출연한 최은순 사모(왼쪽)와 김 목사(가운데)가 MC 임형규 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 신석현 포토그래퍼

초로기 치매는 65세 미만 연령에서 발병한 치매를 말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치매 환자 수는 약 73만명(2017년 기준)으로, 이 중 65세 미만 환자는 약 7만명이다.

치매 진단 후 가족의 삶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김 목사는 일정 부분 아내 도움을 받아 생활해야 했고, 최 사모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가장이 됐다. 첫째 딸 김하영(27)씨는 치매 아버지를 돌보는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해 나갔다. 그의 글에는 치매 걸린 아빠가 만들어내는 웃음과 감동, 때론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눈물, 시간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방송 출연 기회로 이어졌다. KBS 1TV ‘주문을 잊은 음식점 2’ 출연 섭외가 들어온 것. 김명숙PD는 “출연자를 섭외하며 100여명이 넘는 치매인들과 가족을 만났는데 김승만씨는 누구보다 치매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매우 긍정적인 분이라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사모는 “아직 시집가지 않은 두 딸과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남편이 치매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치매 걸린 목사님을 보면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흐려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치매도 더는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숨길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하고 평등한 시선들이 우리 사회에 더욱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김 목사(맨 오른쪽)와 함께 ‘주문을 잊은 음식점 2’에 출연한 치매 환자 ‘깜빡 4인방’. KBS 제공

‘주문을 잊은 음식점 2’는 경치 좋은 제주에 마련된 한 음식점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깜빡 4인방(장한수·최덕철·백옥자·김승만)’이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고 서빙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김 목사는 ‘깜빡 4인방’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막내로 등장한다. 그는 손님의 주문을 종종 잊기도 하고 유독 1번 테이블 찾는 것을 어려워 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이런 실수들을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다.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조금만 배려한다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3.9%를 기록하며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벗

김 목사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창 시절엔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할 만큼 학업 성적도 좋았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제주성한교회에서 열린 부흥사경회에서 부르심을 확신하고 1983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에 수석 입학했다. 최 사모와는 전도사 시절, 교회 집사님의 주선으로 만나 1993년 결혼했다. 2000년 화동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김 목사는 한성교회와 양양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 교구 사역자로 사역하며 가는 곳마다 워십팀과 찬양팀도 이끌 만큼 노래 실력도 뛰어났다.

최 사모는 “남편은 좁은 길을 걷는 목사였다”고 말했다.

“부교역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사역하고 싶은 인천주안장로교회에 청빙 받은 남편은 첫 출근길에 ‘시골 교회에 목회자가 없다’는 글을 접하고 그날 바로 사임했습니다. ‘이곳은 내가 아니어도 오고 싶어하는 목회자가 많지만, 시골 교회는 내가 가야 한다’면서 말이죠. 소탈하고 욕심 없이 늘 어렵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과 함께 하는 목회자였습니다.”

그 뒤 시골 교회의 사역은 어땠는지, 목회하며 언제 보람과 기쁨을 누렸는지, 보고 싶은 성도는 없는지 등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김 목사는 답변하지 못하고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성품은 딸의 블로그 글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아빠는 목회 생활이 너무나 고달팠어도 정직하게, 순수하게, 올곧게 살았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진 게 없어서 당장 내 분윳값도 어렵게 구했는데 아빠는 교회 앞 노숙자를 발견하고 우리가 써야 할 이불을 하나 가져다 줬다.(중략) 그것이 아빠의 큰 장점이었다.”

김 목사는 2004년 개척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성도들은 모이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 무기력함과 우울증이 찾아왔다. 김 목사는 개척교회를 내려두고 다시 대구 제일교회와 창원 대원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

“중국 선교사로 가겠다고 서원했는데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 사명을 감당하려는 그의 고백은 눈물겹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김 목사는 2016년부터 아내와 함께 편의점을 열어 함께 운영해오고 있다. 최 사모는 “방송 출연 이후 오랜만에 남편의 신학교 동기들이 찾아와주고, 편의점 손님들이 같은 아픔을 경험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공감과 위로를 건네올 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남편을 돌보며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치매 환자라는 것을 가끔 잊어버리고, 급할 땐 화를 내기도 한다. 24시간 돌보며 남편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치매를 통해 얻게 된 기쁨도 있다고 했다. 바로 시간의 소중함이다. 초로기 치매는 노인성 치매보다 진행이 더 빠르다. 최 사모는 “오늘이,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우리에겐 갈등하며 싸울 시간조차 없다.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루를 선물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가족들의 노력으로 남편은 하루하루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제보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인들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손편지를 적어 복음도 증거하고 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부디 주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오르시어 평생 복된 날, 영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김 목사는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좋은 것 많이 먹고, 부디 건강 잘 챙기며 사역하라”고 조언했다. 김승만 목사와 최은순 사모의 애틋한 이야기는 유튜브 ‘더 미션’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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