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도입과 한국의 산업

국민일보

[시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도입과 한국의 산업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입력 2022-08-16 04:02

에너지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공공의료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미국 상하원을 통과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미국 제조업 활성화, 기후 대응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을 확대해 에너지안보를 강화하고 배터리 및 주요 광물 가공의 온쇼어링 생산세액 공제, 전기차 등 청정제조기술과 설비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등을 통해 기후 대응과 청정에너지 생산을 가속화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신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 중고차는 4000달러까지 세액공제를 한다는 전기차 보조금 개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미국 정부는 2009년부터 전기차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제조사별로 연간 20만대의 한도 규정을 적용했는데, 이 한도를 폐지해 미국 내 전기차 보급 확산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눈에 띄는 건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지원 조항이다. 미국 내에서 조립·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며,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물론이고 배터리 원료가 되는 핵심 광물과 부품 비율에 대해서도 기준과 세액공제 한도를 정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배터리이면서 동시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국가 또는 북미 지역에서 재활용된 핵심 광물과 부품 기준을 충족하는 전기차에 대해서만 최대 7500달러의 혜택을 제공하게 된다. 사실상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를 배제하고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며, 기후 대응 투자를 자국산 제품 수요로 연계시켜 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생산기반의 미국 현지 이전이 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들은 이미 대규모 현지 투자를 통해 경쟁국에 비해 유리하다. 현대차가 올해 말부터 앨라배마 공장에서 제네시스 GV70 전기차 모델을 생산할 예정이고, 2025년에는 기아 전기차의 조지아 공장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터리 3사도 미국 자동차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17조5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당장 시행될 경우 국내 전기차 기업은 미국 내 설비 가동 전까지 여전히 세액공제 대상에서 배제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핵심 광물의 적격원산지 비율 충족이 어렵다. 배터리 핵심 광물인 수산화리튬과 탄산리튬의 올 상반기 대중 수입 의존도는 63.2%다. 이는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양극재와 음극재 생산량의 중국산 비중이 각각 70%, 85%에 달하며,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대체할 만한 국가가 거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한·미 FTA 등 통상규범 위배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면서 전기차의 최종 조립 및 배터리 부품 요건 완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민간과 정부의 공동 참여를 모색하고, 핵심 광물의 가공과 정제를 위한 미드스트림 산업생태계 구축과 관련한 다양한 대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산업의 과제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시작된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주도하는 제조거점의 이전, 즉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과정에서 우리 제조업의 성장 전략을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해법 모색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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