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개딸이 팬클럽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국민일보

[여의춘추] 개딸이 팬클럽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입력 2022-08-26 04:07

다음 달 5일 영국 보수당 대표가 결정된다. 집권당인 보수당의 대표는 총리가 된다. 보수당 당대표 선거는 간선제와 직선제가 혼합된 방식이다. 후보들이 출마하면 보수당 소속 하원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최종 후보 2명을 선출한다. 최종 선택은 전 당원 투표로 결정된다. 영국의 보수당원은 20만명 정도다. 이들은 연간 25파운드(약 4만원), 혹은 월 2.09파운드(3320원)를 당비로 내고 다양한 정당 활동에 참여한다. 후보를 추려내는 작업은 국회의원이, 최종 결정은 당원이 하는 셈이다.

오는 28일 결정되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선출 방식은 조금 복잡하다. 대의원 투표 30%, 권리당원 투표 40%, 일반국민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여론조사 5%를 반영한다. 복잡한 선출 방식을 선택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의 기본인 당원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공식 당원은 400만명이 넘는다. 국민의힘도 비슷하다. 누구도 이 숫자를 진짜라고 믿지 않는다. 좀 더 현실적인 당원은 권리당원이다. 민주당은 월 1000원 이상의 당비를 내는 당원을 권리당원이라고 부른다. 현재 117만9933명이다. 국민의힘은 당비를 내는 당원을 책임당원이라고 부른다. 지난 6월 기준 79만명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배출한 독일 기독민주당의 당원 수는 40만7350명(2020년 1월 기준)이고, 현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의 당원 수는 41만9300명(2019년 12월 기준)이다. 당원 규모로만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영국 보수당이나 독일 기민당보다 앞선다. 그렇다고 우리 정당 민주주의 수준이 보수당과 기민당에 앞선다고 말하긴 어렵다.

당원의 부실함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지난 24일 민주당의 당헌 개정안 부결이었다. ‘권리당원 전원투표는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하는 당의 최고 의사결정 방법’이라는 신설 조항이 문제였다. 민주당의 전국대의원은 1만6000명 정도다. 이들이 모여서 투표하는 전국대의원대회가 현재 민주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다. 논리적으로라면 117만명이 참여하는 권리당원 전원투표가 1만6000명이 참여하는 대의원대회보다 권위가 높은 게 옳다. 민주당의 결정은 달랐다.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신뢰하기 어렵고, 일부 세력에 의해 당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당비를 내는 당원 117만명도 진정한 당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게 민주당 형편이다.

당헌 개정 논란의 중심에는 이른바 ‘개딸’이 있다. 민주당 권리당원은 지난해 69만4559명에서 올해 117만9933명으로 50만명 가까이 늘었다. 대선 영향이 컸다. 늘어난 권리당원 중 상당수가 이재명 당대표 후보 지지자로 추정된다. 권리당원 전원투표제가 도입되면, 산술적으로 20만명만 있으면 민주당을 장악할 수 있다.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과반수 찬성 규정 때문이다. 개딸은 당비를 내는 당원이지만, 실제로는 이 후보의 팬클럽 성향이 강하다. 개딸은 대선 기간 이 후보의 강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들의 활동도 이 후보 지지와 이 후보 반대파에 대한 공격이 대부분이다. 정치인 팬클럽이 나쁜 현상은 아니지만, 정치인 팬클럽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노무현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에는 권리당원이 아니라 기간당원이라고 불렀다. 월 당비 2000원을 내는 기간당원은 한때 25만명에 달했다. 한편에서는 당비를 내는 당원이 20만명을 넘어선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호평했다. 다른 한편에선 계파와 특정인 지지를 위한 사조직 당원이라고 혹평했다. 열린우리당은 2006년 11월 기간당원제를 폐지했고, 이듬해에는 당 간판을 내려야 했다.

열성 지지자는 정당의 중요한 정치적 자원이다. 특히 정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20~30대 여성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하지만 팬클럽 회원은 당원이 아니다. 당원은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특정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정당 활동이 많다. 당의 정책적 방향을 검토하고,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활동을 감시하고, 출마할 후보들의 옥석을 가리는 것도 당원의 임무다. 개딸이 팬클럽을 넘어 당원으로 진화했으면 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팬클럽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일은 이 후보를 위해서도, 개딸을 위해서도, 민주당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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