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권익위원장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국민일보

[고승욱 칼럼] 권익위원장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입력 2022-08-31 04:20

국민 권리구제와 국가 청렴도
향상을 위해 만든 기관인데

여야는 정권 교체 이후 위원장
물러나느냐 마느냐로만 싸워

국민 배제하고 이익만 앞세운
얄팍한 정치 공방 그만둬야

국민권익위원회가 아직 뜨겁다. 전현희 위원장이 감사원의 표적 감사를 주장하면서 여야 대결의 상징이 됐다.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국무위원이 버티는 건 ‘알박기’라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법에 위원장 임기를 명시했으니 정권 교체 같은 외부 변수에 영향 받지 말고 업무를 수행하라는 건 더불어민주당의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한 뒤 업무보고도 받지 않았다. 전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고되고 힘든 시간이지만 독립적인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어려움을 이겨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여야 의원들은 조금만 후퇴해도 엄청난 정치적 패배를 기록하게 될 것처럼 권익위 현관 앞에서 비장하게 싸우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권익위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름부터 어렵다. 교육부, 외교부, 국방부 업무는 짐작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름 다이어트에 실패했지만 생소하지는 않다. 기자들도 종종 ‘국가권익위’ ‘국민인권위원회’라고 썼다. 그러니 권익위는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가 합쳐진 기관인 걸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이전에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기능을 통합해 만든 장관급 위원회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권익위가 일도 하지 않고 세금만 축낸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현대 행정의 핵심은 국민의 기본권을 얼마나 잘 보장하느냐다. 만일 어떤 국회의원이 교육부는 학교 많이 짓고 교과서 잘 만드는 기관이라고 말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옛날 어느 장관은 청설(聽雪)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깊은 밤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행정이 개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권익위는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개인이 피해를 봤을 때,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까다로운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도 구제를 받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다. 집에 도둑이 들어야 경찰 필요한 걸 알게 된다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무척 소중한 곳이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직자의 부패를 감시하는 정부 내 헤드쿼터 역할도 한다. 그런데 성격이 다른 세 기관을 경제성을 앞세워 통합해 10년이 넘도록 조직이 겉돈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이 권익위를 잘 모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할 일이 아직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여야의 권익위 싸움은 국민과 아무 관계가 없다. 지난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가 이를 웅변한다. 여야 의원들은 전 위원장과 권익위 직원들을 앉혀놓고 설전을 벌였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 문재인정부와 함께’라는 전 위원장의 페이스북 문구를 영상자료로 제시하며 “평산마을에 가서 외로워하는 문 대통령과 함께 하라”고 했다. 위원장의 개인 페이스북이 공무 수행에 어떻게 방해가 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위원장이 업무 능력이 아니라 당적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면 야당 추천 장관이 협치의 출발이라는 말은 아예 잘못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권익위 기획조정실장에게 “영화 밀정을 봤느냐. (지금 감사원이) 권익위 내부 정보로 감사를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권익위는 잘못된 행정 처리를 고발한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기관이다. 감사원의 표적 감사 여부를 따져보는 건 당연하지만 자료를 제공한 내부 고발자가 있을 것이니 당장 색출하라고 권익위에 요구하는 건 코미디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평생 권익위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살 가능성이 크다. 권익위원장 자리를 누가 채우느냐는 정치인들에게만 관심사다. 개인적으로 다른 할 일이 많은 감사원이 시간과 인력을 쏟아부을 만큼 장관급 위원장의 근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난을 이겨내고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전 위원장의 비장한 각오도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전 위원장이 지난 2년 동안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하고 국민의 권리구제만 생각하며 권익위를 이끌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익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총선이 끝나자마자 낙선한 정치인을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넘었다. 얄팍한 정치 공방은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