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국민의힘 난장판 관전기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국민의힘 난장판 관전기

입력 2022-09-02 04:20

이준석의 자기 정치 공격하고 윤핵관의 권력 탐욕 까발리며
국정 동력 갉아먹은 여당 내전 승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은 정치 방식 성찰하고
윤핵관은 정치 실력 더 보완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만큼 싸웠으면 됐으니 이제 양쪽 다 내려놓기를

구경은 역시 싸움 구경이다. 남들의 다툼을 한 걸음 떨어져 관전하는 일은 제법 흥미진진한데, 요즘 국민의힘 내홍을 지켜보는 일이 꼭 그렇다. 양쪽 다 밑바닥까지 내보인 터라 딱히 응원하고 싶은 쪽도 없어서 구경하기 좋은 싸움판이 벌어졌다. 몇 달 지켜본 김에 그 아수라장의 관전기를 써보려 한다.

이 싸움의 표면적 개전일은 6월 2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다음 날이었다. 이준석 대표가 혁신위원회 구성을 선언했다. 정당 개혁, 공천 개혁을 담당하는 기구. 첫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대선에 지고도 쇄신이 안 보이던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연거푸 이기고도 혁신을 꺼낸 여당 모습은 꽤 신선했다. 어젠다를 선점했으니 잘 됐다면 윤석열정부의 국정 동력이 됐을지 모른다. 알다시피 그 혁신은 거꾸로 난장판의 단초가 됐다.

이튿날 이 대표는 우크라이나에 갔는데, 6월 6일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이 싸움의 키워드 하나가 거기 들어 있었다. “우크라이나행이 자기 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주일 뒤 최고위원회의에서 ‘자기 정치’가 다시 등장했다. “혁신위원회는 이 대표의 자기 정치를 위한 사조직처럼 비칠 수 있다.” 혁신위를 자기 정치 프레임에 집어넣은 배현진 최고위원은 대표적 친윤계로 꼽힌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만든 ‘민들레’란 모임에 속해 있다.

이 싸움은 윤핵관 측이 이 대표의 혁신위를 자기 정치라고 공격하면서 표면화했다. 그가 혁신 과제로 꼽은 공천 개혁을 자기 세력 만들기로 본 것이다. 다음 총선의 공천 룰을 주무르게 놔두지 않겠다는 윤핵관의 각오가 이 대표 축출 배경에 녹아 있다. 배지가 걸린 문제라 그런지 무리수를 불사하며 거칠게 밀어붙였다. 이 대표를 비토하는 친윤 목소리가 갈수록 커졌고, 윤리위 상황이 험악해지더니, 중징계가 내려졌다. 혁신이란 어젠다는 소멸해버렸다.

사실 정치인치고 자기 정치 안 하는 사람은 없다. 우크라이나에 가고, 혁신위를 꾸린 자기 정치가 그렇게 수위를 넘어선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싸움이 시작된 뒤에 보여준 이 대표의 자기 정치였다. 그는 각개전투 하듯 싸웠다. 우크라이나에서도 SNS로 정진석 부의장과 감정싸움을 벌였고, 배 최고위원의 인사에 노룩(no look) 대응을 고수했고, 양두구육 같은 거친 언어를 동원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반박하며 한마디도 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싸움을 지고 있다. 이렇게 일당백 전투력을 보이는 자기 정치가 아니라 정당 정치를 했어야 한다. 당대표였다. 당내 갈등도 조율하고 품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 통합을 말하겠나.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는 대신 SNS에 시니컬한 문장을 쏟아낸 정치는 당내 구성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표현도 이런 모습을 가리킨 거였지 싶은데, 그 메시지 문장은 감정이 섞여 있는 듯 보였다. 이 대표는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에게 여러 번 딴지를 걸었다. 입당 과정부터 ‘대표 패싱’을 문제 삼았고, 선거운동을 보이콧해 다급한 후보가 찾아다니게 했다. 그 배경에도 윤핵관과의 주도권 갈등이 있었으니 6월 2일 표면화된 싸움은 그때부터 물밑에서 벌어져온 셈이다. 누적된 앙금이 많아선지 윤핵관은 절충 대신 축출을 택했다.

선택은 비장했으나 실력이 허접했다. 명분 삼은 윤리위부터 윤리적이기보다 정치적이었다. 감옥에 있는 자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서 비롯된 사건을 굳이 꺼내서, 굳이 그 시점에 다룬 모습은 오히려 내부 총질처럼 비쳤다. 윤리위→비대위→가처분→다시 비대위로 이어지는 과정은 온통 무리수 아니면 꼼수로 채워졌다. 이 대표는 이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빗대 ‘절대반지(과거 친이·친박이 누렸던 권력)를 향한 광적인 집착’이라 했는데, 꽤 적절한 비유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반지를 탐한 이들은 반지를 가질 만한 실력과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고, 좋게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법원 들락거리고 의총 열어가면서 힘을 빼느니 양쪽 다 내려놓고 시간을 갖는 게 낫겠다. 이 대표는 정치의 방식을 성찰할 시간이, 윤핵관은 정치의 실력을 갖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려면 이 난장판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할 누군가가 있어야 할 텐데… 아무튼 구경은 잘했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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