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보육원을 나서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보육원을 나서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입력 2022-09-06 04:20

매년 2500명씩 나오지만
대부분 홀로서기 힘들어

보육원 출신 대학생 2명
잇단 극단적 선택 안타까워

정부·기업·사회가 협력해
지원 시스템 만들어야

시골 한 동네에서 살던 용문이를 우연히 만난 건 서울 어느 공장 주변 한적한 길거리에서였다. 코흘리개 시절 일찍 부모를 잃고 형들 밑에서 자란 용문이는 성격이 활달하고 귀여운 개구쟁이였다. 형들이 엄마 제사를 지내겠다며 솥에 국을 끓이는데 손으로 건더기를 건져 먹으려다 앞으로 넘어져 큰 화상을 입기도 했다. 나보다 네댓 살 어렸던 용문이는 나를 보더니 펄쩍 펄쩍 뛰며 반가워 했다. 고교 졸업 후 서울에 처음 올라와 근처 독서실에서 생활하던 나를 용문이는 저녁 대접을 하겠다며 기어이 자기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방이었다. 부엌은 물론 상이나 도마도 없어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김치를 썰었다. 손에는 화상 흉터가 남아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 자정을 훨씬 넘겨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중학생 나이의 소년공이었던 용문이는 쏟아지는 잠과 힘겨운 씨름을 하듯 욕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지만 용문이는 공장에 나갈 채비를 했다. 자고 있는 나를 살짝 흔들며 귓속말로 밥 차려 놓았으니 먹고 가라고 한 뒤 방을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나는 차려진 밥을 먹고 나왔다. 나도 여기 저기 옮겨 다니던 때여서 그 뒤로 용문이를 본 적이 없다.

수십 년이 지난 얘기가 생각난 건 요즘 잇따르는 고아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아들의 삶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지원하는 보육원 등의 시설을 나오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은 매년 2500명가량 된다.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나와야 한다.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경우 24세까지 시설에 머물 수 있지만 눈치가 보여서인지 보호 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는 절반 뿐이다. 통상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500만원의 자립정착금과 5년 동안 월 35만원의 지원금이 전부다. 어린 나이에 이 돈으로 홀로 설 수 있을까.

지난달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보육원 출신 18세 이모 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학생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뒤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후원금 700만원을 기숙사 비용 등으로 다 쓰고 난 뒤 고민했다는 이군이 기숙사 책상 위에 남겨 놓은 A4 용지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글만 적혀 있었다. 이군은 친구들에게 2만원, 5만원 등을 빌려 쓰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꼬박꼬박 갚았다고 한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후원금 700만원을 다 쓰고 난 뒤 그가 느꼈을 불안감은 매우 컸을 것이다. 보육시설 출신들은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막막함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사회복지사가 돼 본인이 자란 보육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고립감과 경제적 불안감에 눌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일주일도 안돼 광주의 또 다른 보육원 출신인 대학 신입생 이모(19)양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보호종료아동 31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0%인 1552명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호종료예정아동 732명의 경우에도 42.8%가 같은 대답을 했다. 이들이 자살을 생각한 이유는 빈곤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가 33.4%로 가장 높았다. 고립감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일보가 만난 박모(27)씨는 “혼자 생활하면서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끝내자’하는 충동이 생기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자립정착금을 가로채거나 각종 범죄로 끌어들인다. 명의를 빌려주고 휴대폰깡, 불법도박,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등에 연루돼 전과자가 되거나 빚을 지게 되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이들을 방치하면 결국 사회적 부담이 된다.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이들은 서지 못한다.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사회가 모두 나서 디딤돌을 놓아줄 필요가 있다.

시설을 나온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주거 공간과 경제적 지원, 정서 및 생활 관리, 진로 안내와 일자리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을 것이다. 일부 기업이 지자체 등과 협력해 이런 공익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이어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용문이는 잘살고 있을까. 몹시 궁금하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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