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킹달러와 미국의 큰 그림

국민일보

[여의춘추] 킹달러와 미국의 큰 그림

입력 2022-09-09 04:06

이쯤되면 달러의 폭격이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게 지난 6월 23일이었다. 여기서 40원이 오른(원화가치 하락) 1340원대에 도달한 것은 지난달 23일. 두 달 걸렸다. 그런데 8월 29일에 1350원(1350.40원), 9월 2일에 1360원(1362.60원)을 넘어섰다. 가속도가 더욱 붙어 지난 5일 1370원을 넘은 데 이어 이틀 만인 7일에 1380원대까지 진입했다. 이번에는 두 주 만에 40원 가까이 뛰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외엔 보지 못한 현상이다. 물론 달러는 위기마다 강세였다. 세계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의 위력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복합위기에 처한 때 아닌가.

하지만 이처럼 무차별적이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달러 강세에 대한 우려는 자본 유출에 잠 못 이루던 신흥국 및 후진국의 몫이었다. 이번엔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건재했던 엔화와 유로의 위상은 볼 수 없다. 엔화, 유로, 파운드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최근 들어 110선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약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미국과 경제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중국도 맥을 못 추긴 마찬가지다. 현재 달러당 약 6.9위안으로 2년 만에 위안화 가치가 최저 수준이다. 달러 앞에 모두가 무릎꿇은 형국이다. 다시 말해 고물가, 경기 침체의 기조에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대응이 허술했고 경제 체력도 많이 고갈됐다는 얘기다. 이제 달러는 어느덧 강달러에서 킹달러, 갓달러로 지위가 커져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유로화 및 위안화에, 코로나19 직후에는 암호화폐에 의해 달러의 몰락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은 머쓱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킹달러의 지휘자다. 세계 각국의 경제난과 아우성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잭슨홀 연설을 통해 일부 지표 개선에 개의치 않고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다짐했다. 보름 전 미국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8.5%)이 전월보다 둔화돼 매파 기조가 다소 누그러들 것이라는 세계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그 후 일주일 새 사라진 세계 주식 시가총액이 7000조원이었다. “화폐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라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말을 세계는 지금 실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 정부의 태도다. 미국은 올 들어 1,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통상 국내총생산(GDP)이 두 분기 연속 감소하면 경기 침체로 규정된다. 11월 상하원 선거를 앞둔 백악관으로서는 잇단 금리 인상을 악재로 여길 법하다. 하지만 연준의 직진 행보에 모른 척하고 있다. 아니 이 상황을 즐긴다는 느낌마저 준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친 것 같다” 식으로 비판한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킹달러가 지금 시점에서 여러모로 남는 장사라고 여긴 듯하다. 달러 강세는 수입품 가격 하락을 이끌면서 고물가를 극복하게 된다. 반대로 다른 나라에는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셈이다. 미국과의 거래를 끊지 않는 한 내부적으로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고물가 수렁에서 헤매는 이유다. 이를 막으려면 각국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경기 침체 가시화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안전자산을 등에 업은 미국은 일종의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수출 둔화 우려는 미국이 러시아 에너지원을 대체하며 극복하고 있다. 상반기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80%가량 증가했고 천연가스 수출은 6월에 전달보다 2조원가량 늘었다. 에너지 수출 급증에 무역 적자는 석 달째 감소했다.

여기에 조 바이든 정부는 미국을 전 세계 제조업 공급망의 중심으로 세우려 하고 있다. 지금의 복합위기 이후를 내다보고 중국의 추격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겠다고 하고 한국에 유치될 뻔한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납치하듯 빼앗았다. 경제계 한 인사는 사석에서 “미국이 한 손에 달러, 한 손에 제조업 부흥을 쥐고 세계 제패 재현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킹달러 시대에 우리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달러 스와프를 속히 체결해 외환의 안정성을 알리고 통화가치 유지에 나설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의 혁신과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외국인 투자 이탈을 막아야 할 것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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