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려고 1시간 기다린 스토커… 신당역 살인의 순간

국민일보

해치려고 1시간 기다린 스토커… 신당역 살인의 순간

그날 저녁 신당역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22-09-16 00:02 수정 2022-09-16 00:18
한 시민이 15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에서 피의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대자보와 함께 추모의 꽃을 내려놓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벌어진 여성 역무원 살인 사건은 철저하게 계획된 ‘보복 범죄’였다.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가해자는 선고 전날 1시간 넘게 역사 내에서 피해자를 기다려 범행을 저질렀다. 유족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한탄했다.

15일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설명을 종합하면 피의자 전모(31)씨는 전날 오후 신당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당역은 전씨를 고소한 전 직장 동료 A씨 근무지였다. 직위해제 상태인 전씨는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직원 배치표를 보고 A씨 근무지를 알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전씨는 1시간 넘게 역사 화장실 근처에서 A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후 8시56분 A씨가 여자화장실로 들어가자 전씨는 바로 뒤따라 들어가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전씨 행적을 보면 우발적 살인이 아닌 사전에 시나리오가 있는 계획 범죄로 보인다. 그는 신당역까지 일회용 승차권을 이용해 지하철로 이동했다. 범행 당시 머리에 일회용 위생모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신용카드 등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동선을 숨기고, DNA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는 머리카락 등의 노출을 방지한 것이다. 범행 도구로 쓰인 흉기는 집에서 평소 쓰던 것을 가져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피해자 측은 경찰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고 주장한다. 피해자 사건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피해자가 고소하기 2년 전부터 스토킹 범죄에 시달려 상당히 괴로워했다”며 “스토킹 혐의를 더해 추가 고소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고소하기 어렵다’ ‘같은 사건으로 취급될 것이다’는 취지의 설명을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불법 촬영 혐의로 전씨를 경찰에 고소했다가 3개월이 지나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한 차례 더 고소했다. 불법 촬영 혐의로 처음 수사할 당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고소를 접수한 서울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첫 고소 이후 원치 않는 연락이 온다고 해서 스토킹 처벌법도 적용했는데, 그 내용이 (전씨가) ‘사과한다’ ‘잘못했다’는 내용이어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고소 이후 전씨는 변호사를 통해 합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A씨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친구는 국민일보와 만나 “당시 ‘합의서에 성의가 없다’는 A씨 얘기를 듣고 ‘거절하길 잘했다’고 말해줬는데, 그때 합의를 해줬다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전씨는 범행 당일 재판부에 반성문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A씨의 유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스토킹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며 “제대로 된 매뉴얼이 마련돼 재발을 막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해자가 희생된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싶지 않다” “가해자를 더욱 강력히 처벌하라” 등의 문구와 함께 추모 의미로 흰색 국화꽃이 놓여졌다.

스토킹 피해 신고자가 또 다시 희생되면서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피해자 보호 등 제도적 개선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제 관련 기관이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비공개로 사건현장을 방문했다.

김판 양한주 이의재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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