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김건희 특검법과 공수처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김건희 특검법과 공수처

입력 2022-09-20 04:20

존폐 위기 공수처, 새 현판식
갖고 다시 출발했지만 시선은
싸늘해… 성역 없는 수사라는
존재 이유 다시 돌아봐야

특별감찰관 부재 속에 역할
막중… 김건희 고발 사건부터
좌고우면 말고 입장 밝히길
정치 공세 특검법은 후순위

시작은 화려했다. 지난해 1월 정부과천청사에서 대대적으로 현판식을 갖고 출범할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오랜 논쟁 끝에 시대적 여망을 안고 탄생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였기에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권력형 비리를 처단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해 4월 정원 25명을 채우지 못하고 검사 13명으로 업무를 시작할 때 우려가 많았지만 김진욱 처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비유로 들며 “13명 가운데는 무학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 출신이 많은데 세상을 바꾸지 않았냐”며 자신감까지 내보였다.

그 호언장담이 식언이었음은 1년 만에 드러났다. ‘황제 조사’로 인한 정치적 중립성 논란, 엉뚱한 1호 사건 선택, 무분별한 민간인 통신자료 조회, 사실상 실패한 ‘고발 사주’ 수사 등으로 참담한 결과만 낳았다. 무능한 수사력이 문제였다. 결국 김 처장은 지난 5월 국민께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쇄신책은 내놓지 못한 채 인력 부족, 제도 미비 등을 탓했다. 지휘부 책임론은 일축했다. 하지만 당초 출범 때부터 지적됐던 문제를 이제야 거론하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위기는 계속됐다. 검사와 수사관들의 이탈 현상마저 생겼으니 설상가상이다. 올 들어 검사 2명이 사직했고 수사관도 여러 명 떠났다. 최근 충원에 나섰지만 아직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 상태다. 공수처는 지난달 26일 새 로고(CI)를 반영한 현판 제막식을 가졌다. 그간 정부 부처의 태극 문양 로고를 임시로 써왔는데 독립기관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연구 용역을 의뢰해 새로 제작했다. 김 처장은 새 현판식을 한 날이 공수처가 새로 시작하는 날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그 말대로 진짜 공수처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외부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사실 존재감을 잃은 공수처는 존폐 위기에 내몰린 형국이다. 신생 조직 탄생에 일조한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부 여당은 공수처의 이첩요구권을 폐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공수처는 분기점에 서 있다. 공수처로선 존재 이유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건 바로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견제다. 지금 공수처의 현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고발 사건이다. 시민단체가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과 관련해 고발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사법권력 상층부에 있는 헌법재판관의 ‘골프 접대’ 의혹 사건은 이미 강제 수사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들 사안이야말로 공수처가 사실 여부를 분명하게 규명해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할 책무가 있다.

특히 대통령 배우자와 친인척 비위를 감시할 특별감찰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공수처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김 여사 관련 의혹이 핵심이다. 우선, 수사 대상이 되느냐부터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 가족을 수사할 경우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한정한다고 공수처법에 규정돼 있어서다. 김 처장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수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토 중이다. 법과 원칙에 입각해서”라고 답했다. 한데 한 달이 돼가는데도 가타부타 소식이 없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수사 착수 여부를 속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 관저 공사 수주 특혜 등 각종 의혹도 공수처가 들여다볼 수 있는 사안이다.

지금 정국은 민주당의 ‘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실 국정조사’ 요구로 연일 시끄럽다. 특검법은 국민의힘이 절대 불가를 외치는 데다 대통령의 거부권 가능성도 있어 실효성 떨어지는 정치 공세다. 특검법 패스트트랙의 열쇠를 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특검법 반대 입장을 밝히며 긴 호흡으로 가면서 정치의 온도를 낮추자고 했다. 의혹이 있다면 공수처에 맡겨보고, ‘박근혜 시즌2’를 방지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제를 빨리 도입하자고 호소했다. 맞는 말이다. 일에도 순서가 있다.

특검법안에 기재된 의혹 3가지(주가 조작, 허위 경력, 뇌물성 후원) 중 2가지는 주로 결혼 전, 1가지는 대통령 취임 전의 의혹이다.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그게 미진하다면 그때 특검을 주장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건 대통령 취임 이후에 터진 문제다. 미덥지 않지만 공수처가 나서도록 촉구하는 게 먼저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공수처로서도 기사회생을 위해 옥쇄를 각오할지, 아니면 연명을 위해 팔짱만 끼고 있을지를 결심해야 한다. 공수처가 답할 차례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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