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이다

국민일보

요한계시록은 □□□이다



암호문? No

입력 2022-09-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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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민식

‘헥사코시오이헥세콘타헥사포비아’. 발음조차 쉽지 않은 이 단어는 ‘악마의 숫자’라 불리는 666의 그리스어 표현에 공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포비아를 합친 것이다. 우리말로 풀면 ‘666 공포증’이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이 숫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 신학계에선 초대교회를 핍박한 로마의 네로 황제를 상징하는 걸로 해석됐지만, 대중에겐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공포의 숫자로 인식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며 구입한 로스앤젤레스 집 주소에 666이 들어가자 아예 번지수를 바꿨을 정도였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또 다른 숫자 14만4000은 어떤가. 이 숫자만큼의 사람이 말세에 구원받는다는 내용은 우리 사회를 미혹해 온 여러 이단·사이비 단체의 핵심 레퍼토리다. 사도 요한이 1세기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한 계시록이 어쩌다 현대 기독교인에게 공포와 미혹의 대명사가 된 걸까.

암호문 아닌 통찰력 담긴 작품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 파트모스섬 내 성 요한 수도원 풍경. 픽사베이

계시록은 요한이 그리스의 파트모스섬에서 유배 중 소아시아 지역 7개 교회에 쓴 편지이자 묵시(默示)다. 그가 계시록을 집필하던 당시는 초대교회를 향한 로마제국의 압제가 극에 달할 때였다. 모진 박해에 직면한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계시한 메시지를 전하며 희망을 품고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하는 것이 계시록의 주요 골자다.

요한이 환상을 보는 형식으로 하나님 계시가 전달되기 때문에 계시록 본문에는 기괴하고 난해한 표현이 적잖이 나온다. 선과 악의 대립과 최후 심판 현장에 등장하는 붉은 용, 태양을 둘러 걸친 여자, 생명책과 새 예루살렘 등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한국교회 역할에 관해 다룬 책 ‘어떻게 믿을 것인가’(이와우)에서 계시록 내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계시록 내용이 로마 정권에 알려지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큰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상징적인 문학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그리스도인의 인내와 희망과 이뤄질 하늘나라에 대한 신념을 굳혀줬다. 문맥 하나하나는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주류를 만드는 정신은 기독교의 승리와 더불어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향한 희망과 신앙을 강렬하게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김형석 교수는 비유와 상징이 빼곡한 계시록을 “단테의 ‘신곡’이나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는 자세로 읽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말한다.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 목사 역시 ‘요한계시록, 현실을 새롭게 하는 상상력’(IVP)에서 계시록을 ‘초대교회 시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로 칭한다.

피터슨 목사는 “우리는 계시록을 해독이 필요한 암호문으로 보는 게 아니라 상상 속에서 풍부한 의미와 통찰력을 담은 은유의 책, 참으로 경이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봐야 한다”며 “사도 요한은 시인의 언어를 구사하되 오래된 진리가 신선하게 와 닿도록 참신한 방식으로 (계시록을) 표현했다”고 평했다. 이어 “계시록은 독자로 하여금 천사와 짐승이 벌이는 천상의 전투, 섬뜩한 징벌과 영광스러운 구원, 변화무쌍한 환상과 우주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가득한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풍부한 상상력의 보고”라며 “그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은 목적을 새롭게 깨닫고 그분을 더없이 경배하게 만드는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고 했다.

잘못된 해석이 미혹의 원흉

요한계시록은 암호문이 아닌 풍부한 상상과 통찰력이 담긴 책으로 이해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사진은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 게티이미지뱅크

복음서와는 달리 남다른 매력이 있는 계시록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특징 탓에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 오류가 계시록의 상징적 언어를 문자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단이 자의적 성경 해석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로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비근한 예가 앞서 언급한 14만4000이다. 최승락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는 24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수는 수리적으로 접근하기보단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에 승리하는, 구원받은 이들의 총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걸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하면 ‘구원받은 사람이 13만9999명이면, 14만4001명이면 어떻게 되느냐’란 식의 질문도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 허구적 개념을 끌고 와 계시록을 해석하는 문제 역시 심각하다. 말세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심판할 때 구원받은 이들이 공중에 들려진다는 뜻의 ‘휴거’는 기독교의 최후 심판과 관련해 흔히 논해지곤 한다. 이 때문에 계시록과 연결지어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실상 휴거는 계시록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신학자이자 종교학자인 티머시 빌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교수는 그의 책 ‘계시록과 만나다’(비아)에서 “계시록에는 휴거라는 말은 물론, 적그리스도란 말 역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본래 적그리스도의 개념은 요한서신(요한1·2서)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한 말이지만, 계시록에서 언급한 짐승(계 13:11~18)이 적그리스도로 해석되면서 같은 개념으로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종말론과 언급되는 ‘7년 대환란’ 역시 계시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평신도를 위한 계시록 해설서 ‘요한계시록은 쑥떡이다’(쿰란출판사)를 쓴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는 “7년 대환란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적지 않은 이들의 머릿속엔 이 표현이 계시록에 언급돼 있다고 각인돼 있다”며 “잘못된 계시록 해석이 널리 퍼지면 그 토양 위에 이단이 생기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구약 성경 위주로 해석해야

전문가들은 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교회의 도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의 중심에 놓고’ ‘신구약 성경 위주로’ 읽을 것을 조언한다. ‘평신도를 위한 쉬운 요한계시록’ ‘스토리 요한계시록’(브니엘) 등을 펴낸 양형주 대전도안교회 목사는 “계시록의 상징과 비유는 혼자 읽고 깨우치기보단 교회의 성경해석 전통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양 목사는 “이단은 교주 개인의 경험을 계시록에 끼워 맞춘 뒤, 자기네 단체만이 ‘이 시대의 천년왕국이자 시대의 방주’란 결론을 내린다”며 “이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주요 이단이 제시하는 계시록 해석 문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역사-교훈-예언-성취’를 큰 틀로 한 이단의 성경해석과 비유풀이는 처음엔 정통교회 해석과 유사하지만 결국엔 교주를 위시한 이단 교리가 가미된다. 양 목사는 “이단의 성경해석 문법을 간파하는 것은 신학생도 쉽지 않은 만큼 교회의 안내를 받아 계시록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의 주축에 놓고 계시록을 해석한다면 이단의 마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그는 “계시록에서 제일 결정적인 가르침은 ‘어린 양’ 즉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야만 최종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계시록에서는 오직 예수만 두루마리 봉인을 풀 수 있다고 나오는데 이단은 교주도 예수처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정통과 이단의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계시록의 숨겨진 실상을 밝혀준다’는 이유로 신구약 성경 외의 개념을 끌어와 해석한다면 이단일 가능성이 높다.

김상훈 총신대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는 “계시록은 은닉되거나 특정인만 들을 수 있는 숨겨진 책이 아니”라며 “상징과 비유가 적잖게 나오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그 뜻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계시록에 등장한 용이 마귀라고 본문(계 20:2)에 설명된 것이 단적인 예”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자적 해석을 넘어 상징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라도 계시록 본문과 신약을 돌아보면 해석의 힌트가 나와 있다”며 “계시록이 어렵다는 인식을 버리고 성경 본문 위주로 읽으려는 노력을 성도들이 기울인다면 이단의 미혹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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