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학안전포럼’이 가야 할 길

국민일보

[기고] ‘화학안전포럼’이 가야 할 길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입력 2022-09-22 04:02 수정 2022-09-22 04:02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관리 규제는 대폭 정비됐다. 참사 원인 물질인 살생물물질을 관리하는 법이 신설됐고, 화학물질 등록 대상 물질도 유럽 수준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국민과 기업 모두 아쉽다는 반응이다. 국민은 실질적 안전이 강화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기업은 효과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책임이 늘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매우 정상적이다. 규제가 마련됐다고 해서 저절로 내실 있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을 개선하고, 비효율적인 부분은 제거하는 노력을 거듭해야만 내실 있는 규제가 마련될 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화학안전 숙제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국민과 기업이 정부와 함께 시행착오를 겪은 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경험을 성공적으로 가져본 적이 없어서다.

실험은 그래서 시작됐다. 2020년 환경부와 시민사회, 산업계는 ‘함께 더 나아가는 화학안전’이란 슬로건으로 화학안전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 방향으로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2021년 화학안전정책포럼을 시작했다. 시민사회와 산업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규제 내실화 의제를 가져와 토론하는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산업계에선 화학물질 등록 의무화에 따라 유독물질 숫자가 계속 증가하니 유독물질에 대한 기업 관리 책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자고 요구했고, 시민사회는 발암성 물질과 환경호르몬 관리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토론은 성공적이었다. 기업의 불편을 줄이면서 국민의 안전을 더 강화할 방안이 논의됐다. 올해 화학안전정책포럼은 실험이라는 딱지를 떼어냈다.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 내실화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됐으며, 화학안전에 대한 이해당사자 간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중장기 추진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에 들어갔다. 그리고 화학안전정책포럼 운영 규정도 마련했다.

멋진 합의들이 등장했다.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언제든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를 마련하고 모든 회의와 토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론장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올해 중으로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 내실화 방안이 합의돼 내년에 법 개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에는 포럼을 통해 국민과 환경의 보호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로드맵이 마련될 계획이다. 이해당사자 토론과 합의에 따라 화학물질 관리 법률이 개정되고 새로운 국가 계획이 수립되는 최초의 사건이 될 듯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은 나라라면 더 안전한 다른 나라가 돼야 한다. 시대가 원하는 그 길로 화학안전정책포럼이 우리를 데려가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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