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었는데 절망해도 되나”… 진은영, 10년 만에 4번째 시집

국민일보

“나이 먹었는데 절망해도 되나”… 진은영, 10년 만에 4번째 시집

[책과 길]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140쪽, 1만2000원

입력 2022-09-22 20:27

요즘 시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진은영의 새 시집을 들고 있는 것일까. 진은영의 10년 만의 신작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가 출간 3주 만에 1만부를 돌파했다. 시집으로는 놀라운 판매 수치다.


진은영의 네 번째 시집이 되는 이번 시집에 실린 ‘청혼’과 ‘그날 이후’는 이미 많이 알려진 시다. 2014년 문학잡지에 발표된 ‘청혼’은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며 널리 읽혔다. ‘그날 이후’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유예은 양의 ‘생일시’로 유명하다. 죽은 예은 양이 엄마, 아빠, 할머니, 언니, 동생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그날 이후’ 중)

진은영은 철학적 사유와 정치성으로 유명한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에서는 아름다움이 먼저 감각된다. 시 한 편 전체를 이해하기도 전에 어떤 구절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고, 그 시구 하나만 거듭 읽고 있어도 충분히 충만해지는 시들이다.

진은영은 몇 단어만으로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봄여름가을겨울’ 중), “이놈의 세계는 매일매일 자살하는 것 같다” “나이 먹었는데 절망해도 되나”(빨간 네잎클로버 들판), “나는 꿈에 못 박혀/ 아직 살아 있답니다”(‘스타바트 마테르’ 중) 같은 시구들에 붙잡히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남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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