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세상을 읽는 기준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세상을 읽는 기준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입력 2022-09-23 04:03

나에게 애호박은 시장을 읽는 바로미터다. 청국장을 무척 좋아해 일주일에 두어 번씩 끓여 먹는데, 이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애호박이다. 양파나 청양고추, 마늘과 파는 일찌감치 썰어 냉동시켜 저장해 두지만, 애호박은 영 그렇게 할 수 없어 늘 구매한다. 그런데 애호박의 가격 변동이 정말 상당하다. 지난 주말에는 우연히 한 개에 7500원짜리 친환경 애호박을 보고야 말았고, 오늘에서야 1700원까지 내려온 애호박을 발견하게 됐다.

애호박으로 물가를 가늠한다는 나의 말에 한 지인은 “나는 바나나가 기준”이라고 했다. 바나나는 수입 품목이라 그리 변동이 없을 것 같지만, 유가와 환율이 오르고 물러지기 쉬운 계절이 되면 그 역시 비싸겠구나 싶었다. 복숭아나 포도처럼 특정 계절에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 년 내내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살갗에 와 닿는 지표다웠다. 주변에도 물어보니 어머니는 무와 배추로, 다른 친구들은 고구마와 계란, 사과로 시장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지표를 하나둘 드러내다 보니, 우리는 자신의 생활 패턴 또한 슬쩍 들키게 됐다. 가령 김치를 자주 담근다는 것은 그만큼 집에서 음식을 많이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포기를 자르고, 볶고, 지지고, 끓이는 행위가 있어야만 김치는 충분히 소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추를 지표로 꺼낸 이들은 그 조리를 다 해내는 이들이다 싶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달고 부드러운 채소를, 홀로 사는 친구들은 아침에 간단히 먹는 계란과 바나나를 고르게 내세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시장을 읽는 바로미터는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바라는 바는 같다.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최적의 가격에 구해 맛있게 먹는 것! 세상의 이치도 그러하지 않나. 다같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동일한 목표다. 애호박이나 바나나로 세상을 보는 게 옳으냐 등을 놓고 따지고 드는 것은, 어쩐지 공통의 지향점에서 자꾸만 벗어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