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에이, 그건 약과

국민일보

[가리사니] 에이, 그건 약과

이용상 산업부 차장

입력 2022-09-26 04:06

올 추석에 약과를 선물 받았다. 난 약과를 잘 안 먹는다. 엄청난 칼로리를 보유했을 것 같은 모양새인데, 그걸 감수하고 먹을 거면 차라리 떡볶이나 치킨이 낫겠다는 입장이다. 주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추석 고향 방문 때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가 약과를 보더니 “와, 약과다”하고 좋아했다. 다음 날 퇴근길에 아내와 통화했는데 입에 뭘 잔뜩 머금고 있길래 “뭐 먹어?” 물었더니, 이미 선물 포장을 뜯고 약과를 먹고 있다고 했다. 낱개 포장으로 12개 들어있는 거였는데 그날 이후 매일 하나씩 먹더라. 아, 어르신 입맛이었던가. 처음 알았네.

얼마 뒤 적어도 나에겐 다소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요즘 MZ세대가 약과에 푹 빠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입소문 난 곳은 약과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약케팅’(약과+티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유명 약과 가게는 매일 아침 웹사이트에서 주문 예약을 받는데 오픈 몇 초 만에 품절이 돼 버려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을 방불케 한다는 의미다.

약과는 어떻게 이 같은 신분 상승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이미 일부 전문가는 약과 열풍을 두고 새로운 사회 현상을 대할 때처럼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약과는 요즘 MZ세대들이 좋아하는 맛이다. 겉은 캐러멜, 피는 페이스트리, 속은 도넛 같다. 둘째, 희소성이다. 사랑받는 약과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물량이 많지 않고 그만큼 구하기도 힘들다. 셋째, ‘옛것’에 대한 흥미다. 이건 뉴트로(New·새로움+Retro·복고) 열풍과도 맥을 같이 하는데, 요즘 MZ세대는 과거에 인기 있던 것들을 새롭고 재밌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요즘 약과의 인기는 고려·조선시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약과(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다.

약과는 통과의례나 명절, 잔치, 제향(祭享)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음식이었다. 꿀과 기름을 섞어 밀가루 반죽을 한 뒤 판에 막아 모양을 내고 튀긴다.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데도 백성들이 많이 먹었다. 그러다 1192년 고려시대 명종은 약과 제조 금지령을 내린다. 약과를 만드느라 곡물, 꿀, 기름 등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물가가 올라 민생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였다. 1353년 공민왕도 같은 이유로 약과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도 함부로 약과를 만들면 벌로 곤장 80대를 때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약과를 인플레이션 원인 중 하나로 본 것이다.

요즘 전 세계는 심각한 인플레이션 우려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6월 41년 만에 최고치(9.1%)를 기록했다. 유럽은 9.1%(8월), 영국은 10.1%(7월)에 달했다. 한국 경제도 세계적 인플레이션 파고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선의 카드는 아무래도 금리 인상이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3번 연속 거인의 보폭(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를 올렸다. 한국도 달러 유출을 막으려면 미국 수준에 맞춰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가계경제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고려·조선시대 약과는 권력자에게 주는 선물로 많이 쓰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산삼이나 녹용 같은 더 귀한 것들이 나오면서 약과를 받으면 “에이, 이건 약과네”하는 하찮은 존재가 됐다. 우리가 흔히 쓰는 “에이, 그건 약과지”라는 표현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원·달러 환율 1400원 돌파, 한국과 미국 기준금리 역전, 역대급 물가 상승, 우크라이나 사태발 에너지 수급 불안, 역대 최대 무역적자 우려…. 모든 지표가 점점 더 최악을 향하고 있다. 지금도 한국 경제가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는데 몇 년 뒤 2022년을 회상하며 그땐 약과였다고 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이용상 산업부 차장 sotong203@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