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왜덕산(倭德山)

국민일보

[한마당] 왜덕산(倭德山)

전석운 논설위원

입력 2022-09-26 04:10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리의 한 야산에는 ‘왜덕산’이라는 공동묘지가 있다. 1597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한 왜군의 시신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당시 왜군은 이순신의 배 13척을 우습게 여기고 330여척을 앞세워 울돌목으로 밀고 들어왔다가 거의 전멸했다. 배에 타고 있던 왜군은 대부분 수장됐다. 일부 시신들은 내동리 앞바다로 떠밀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시신 100여구를 수습했다. 왜군의 잔인한 학살에 치를 떨었지만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비록 적군이지만 죽은 사람의 시신은 잘 수습해줘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덤의 이름은 ‘왜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던 왜덕산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건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백년도 더 지난 2003년이었다. 진도문화원 관계자와 향토사학자들이 삼별초 전적지를 답사하던 중 내동리 주민 이기수씨로부터 왜덕산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에서도 왜덕산을 찾아왔다. 명량해전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일본 장수의 고향 사람들이 8월 보름이면 이곳에서 성묘를 한다.

지난 24일에는 진도문화원과 교토평화회가 공동주최한 위령제가 열렸다. 추모사를 낭독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사죄는 고통받은 이가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왜덕산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한국과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길 때 두 나라의 미래는 좀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의 ‘코무덤’을 찾아가 사죄하기도 했었다. 코무덤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베어간 조선인 12만6000여명의 코가 묻혀 있는 곳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처럼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철저한 사죄를 주장하는 일본 정치인은 드물다. 그러나 하토야마 전 총리의 주장을 지지하는 일본인이 많아져야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도 누그러들 것이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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