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국민일보

[세상만사]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입력 2022-09-30 04:06

아기가 옹알이할 무렵이면 부모는 매일 거짓말을 한다. 엄마를 말했다, 아빠를 말했다며 호들갑이다. 말을 했다기보다 입을 여닫다가 우연히 비슷한 소리가 났을 뿐인데 부모에겐 자신을 부른 것처럼 들린다. 이때부터 부모는 매일 수시로 아기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엄마, 아빠를 반복한다. 아기는 부모에게 눈을 맞추고 입술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매우 신중하게 잘 듣는다. 그렇게 단어를 습득하고 말을 배운다. 대화할 때도 부모와 아기는 서로에게 집중한다. 아기는 이때 표정에서, 눈빛에서, 발음의 높낮이에서 부모의 감정을 파악하는 법도 배운다.

듣기는 매우 중요하다. 영유아기 언어 습득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커서도 잘 들어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먼 곳을 보거나 두리번거리면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다. 의사소통에도, 관계 형성에도 감점 요인이다. 들을 때는 미리 짐작하고 판단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말을 가로채 이야기를 끊거나 조언이나 언쟁을 준비하려고 하면 상대의 말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말하는 순서를 지켜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뜻이나 의도를 물어보기도 해야 한다.

아기가 자라 또래 집단에 속하게 되면,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듣기보다 말하기에 골몰한다. 자기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욕도 배운다. 호기심으로 배워 활용법을 체득하면서 점점 많이 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등학교 때가 아마 험한 말 사용의 정점이지 싶다. 듣기 거북한 일상의 대화가 이어진다. 듣는 이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욕을 친근한 방식으로 말하는 법도 깨우친다. 사회에 나오면 말하기의 횟수도, 욕의 사용도 줄어든다. 위계 사회에서 또래 집단의 방식으로 상대를 대하다간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말하기는 인격을 나타낸다. 말하는 태도와 단어 선택 등으로 교육의 정도, 성격 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욕설이나 비속어를 자주 사용하면 오히려 자신을 깎아내려 이로울 게 없다. 일정한 지위에 오른 뒤 상대에게 친근감을 주겠다고 가볍게 욕설까지 섞어 대하면 당장은 친해진 것처럼 보일진 모르겠지만 마음을 얻진 못한다. 듣는 사람, 상황 등에 적합한 단어를 써야 한다. 논리적이지 않거나 어설픈 말하기는 듣기와 읽기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읽기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다.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이를 떠나 꾸준히, 많이, 다양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 너머의 삶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경험에 갇히지 않으면서 편견과 아집,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쓰기는 언어의 종합 운용 능력이다. 듣기와 읽기는 정보의 수집과 해석, 말하기와 쓰기는 생각의 결과와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 하나다. 듣기와 읽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말하기와 쓰기를 잘하기 어렵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의 능력이 쌓여야 넓고 깊은 사고력을 갖게 되고 인성과 품성 품위 품격, 교양을 갖출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선 교양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의 본성이라고도 한다. 인은 측은지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어질다는 뜻이고, 의는 수오지심, 부끄러워하는 마음, 옮음을 뜻한다. 예는 사양지심, 겸손 배려 등의 예절, 지는 시비지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혜다. 신은 광명지심, 중심을 잡고 빛을 내는 믿음이다. 네 가지는커녕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말하기를 더디 하고, 듣기와 읽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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