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타다, 쌀, 대형마트… 표심과 민심 사이

국민일보

[여의춘추] 타다, 쌀, 대형마트… 표심과 민심 사이

입력 2022-10-07 04:06

2020년 2월 19일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의 운영이 합법이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타다 운영사 VCNC 직원들은 “그래, 이게 나라가 맞지”라며 기뻐했다. VCNC 박재욱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오늘 부로 저희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서비스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하시던 일에 자부심을 갖기 바랍니다.” 환호와 박수가 사무실을 메웠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타다: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에서 위 장면은 다시 봐도 짠하다. 약 2주 후 황당무계한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할 줄 누가 알았겠나.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졸속 입법 사례인 ‘임대차 3법’과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법’은 선거 끝난 뒤에 나왔다. 총선 압승의 힘자랑(임대차 3법)과 대선 패배 후 분풀이(검수완박)였다. 이와 달리 타다 금지법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특정 표심만을 위해 법원 무죄 판결을 뒤엎고 통과시킨 위인설법이다. 파렴치로 따지면 앞의 두 법을 능가한다.

2019년 12월 한 여론조사에서 타다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77%였다. 26만명의 택시 기사 표를 위해 민심과 170만 가입자를 저버렸다. 2년 반이 흘렀다. 지난 4일 정부의 ‘심야 택시난 대책’ 발표는 ‘타다 금지법’의 실패 고백이었다. 법이 지향한 택시 업계 활성화나 처우 및 서비스 개선은 없었다. 택시 기사 수는 약 3만명 줄었다. 코로나 영향이 없지 않지만 코로나 아니었으면 택시 시장이 발전했을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법 통과 당시 “타다 금지법이 아닌 타다 활성화법이다”라고 강변한 국토교통부는 “택시 서비스는 미래 모빌리티 변화에 너무 맞지 않다(원희룡 장관)”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이제서야 규제 완화에 나서겠단다. 정치와 정부가 무능하면 민생과 혁신에 얼마나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국토부가 택시 대란 대책을 내놓은 시간, 국회 농해수위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 여야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쌀 수급 안정을 위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하게 할 수 있다’에서 ‘매입하게 해야 한다’로 바꾸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한 것이다. 쌀 과잉 공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2년 69.8㎏에서 지난해 56.9㎏으로 약 18% 감소했는데 쌀 생산량은 같은 기간 3% 감소에 그쳤다.

식습관 변화에 따른 쌀 소비 감소세는 다른 작물 활성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재정으로 메우려 한다. 돈 주면 농가는 쌀 생산에 더욱 나서고 가격은 더 떨어지는 게 수요·공급 원리다. 악순환이 눈에 훤하다. 개정안 통과 시 매년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농촌경제연구원). 복합 위기 국면에서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나 다수당인 민주당은 지난달 농해수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많은 국민 우려에 아랑곳없이 농민 표심에 직진했다.

현 정부가 규제개혁 우선 순위로 놓았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10년 전 도입됐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소비자 10명 중 7명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봤고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에서 장을 본다’는 대답은 16%에 그쳤다. 대구에선 상인연합회가 의무휴업 유예를 요구할 정도였다. 지난 7월 대통령실이 주관한 ‘국민제안 온라인 국민투표’에서 10개 규제 개혁안 중 57만표로 1위였다. 이 정도면 민심의 방향은 정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난 8월 전통시장을 방문한 뒤 조용히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인기없어 시무룩하던 차에 상인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니 힘이 났나 보다. 어차피 민주당이 반대할 사안인데 반갑게 맞아준 자영업자를 외면하기 어려웠지 싶다.

2년 전 여당 소속이면서도 타다 금지법에 반대한 이철희 전 의원은 다큐 ‘타다’에서 “겨울에 옷을 두껍게 입는다고 버티면 봄이 안 옵니까”라고 말했다. 두꺼운 옷을 계속 입고 싶어하는 표심과 봄맞이를 기대하는 민심의 거리를 좁히는 게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상호 소통과 양보의 장을 마련하면 표심과 민심의 합치는 어렵지 않다. 택시 기사의 처우 개선과 세계 80여개국에서 도입한 타다류 서비스의 동행이 왜 불가능한가. 표심과 민심이 가까워야 사회통합 및 개혁이 원활히 추진된다. 매번 ‘춘래불사춘(봄이 왔으나 봄같지 않다)’인 나라에 미래는 없다. 총선이 1년반 남았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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