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대한민국, 많은 것을 잃었다

국민일보

[여의춘추] 대한민국, 많은 것을 잃었다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2-11-04 04:08

‘한국’과 ‘압사’는 한국과 ‘폭탄 테러’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봤다. 전형적 후진국형 재난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의 순례 사고에서 가깝게는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 축구장 사고까지. 무질서, 혼돈, 광기, 시민의식 부재가 표출되며 나타나는 게 압사다. 한일 월드컵, 탄핵 촛불 집회 등에서 100여만 명이 한 곳에 몰려도 사고는커녕 난동조차 거의 없어 세계의 칭송을 받은 한국이다. 1959년 부산의 시민 위안잔치 사고(67명)와 1960년 서울역 사고(31명)가 역대 국내 압사 규모 1, 2위였다. 60년도 더 된 세계 최빈국 시절 일이다.

그렇기에 화재, 폭발 등 특이 변수도 없었는데 21세기 수도 서울의 도로에서 156명이 이동 중 떠밀려 압사당한 일은 초현실적이다. 좁은 골목, 해방감에 들뜬 10만명의 인파. 위험은 도사렸지만 이를 극복할 시민의식과 노하우가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일과 갖고 있던 인식의 차가 커 뭐가 문제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정부의 해명을 미덥진 않지만 반은 수긍했다.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다.” 촘촘한 안전관리 제도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운이 없으면서도 너무 안타까운 사고였다고.

순진한 믿음이었다. 국민들은 사고 나기 4시간 전부터 112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를 했다. 녹취록을 보면 11번의 신고엔 긴박함과 간절함이 가득했다. 한 신고자는 현장의 영상을 경찰에 보내주기까지 했다. 국민이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경찰 등 당국은 나서지 않았다. 선 채로 압사당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건이 프레스 기기에 압축된 거나 다름없는데 이런 죽음도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들의 고통이 소름끼치게 와 닿았다. 인재(人災)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공권력. 대한민국은 신뢰를 잃었다.

지난 2일 오전 출근길에 짬을 내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 갔다. 국화로 뒤덮인 장례 단상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한가운데 있는 외국 청년들의 사진이었다. 하나같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비극의 슬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희생된 26명의 외국인들은 한국을 사랑해서, 알고 싶어서 온 이들이다. K컬처, K콘텐츠의 매력이 이들을 인도했는데 결과는 황망할 따름이다. 외신은 이번 사태를 집중 조명하며 정부의 대처 소홀과 공공안전 실패를 직격했다. 주한중국대사관은 국내 체류 자국민에게 “(한국에선) 사람이 몰리는 혼잡한 장소에 가지 말라”고 공지했다. 압사 사고가 빈번한 이란의 외무부 대변인이 “한국의 현장 관리가 부실했다”고 꼬집었다. 인류를 매혹시킨 한국민의 창의력, 열정과 대비된 관의 무능함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 K무사안일, K안전불감증에 국격이 추락했다. 대한민국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20대의 상실감은 헤아릴 길이 없다. 사망자 156명 중 20대가 104명이다. 세월호 사태 당시 사춘기 또래들이 수장된 것을 목격한 이들은 20대가 되자 이태원에서 다시 죽음과 맞닥뜨렸다. 참사의 강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세월호 사태에선 수익을 위한 선사의 과적과 무리한 운항, 선장의 배신에 학생들이 희생됐다. 반면 이태원에선 청춘이 평소 즐기던 장소를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콕 집을 가해자가 없는 일상 속 죽음이었다. 20대가 느낄 공포는 지금이 더할 듯하다. 여기에 지난 대선 이후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진영의 타깃이 된 때문일까. 희생자 탓하기는 더욱 심해졌다. “술마시러 가다 죽은 걸 어쩌라고” “외국 문화(핼러윈)가 그리 좋더냐”. 두려움에 떤 그들은 기성세대의 질타에 잔뜩 위축됐다. 동시에 “당신들도 2002 월드컵 때 난장의 경험이 있지 않느냐”고 따진다. 올 초 모 언론사 조사에서 20대의 81.7%는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답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연령대별 최고치다. 이들은 자부심을 내려놓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가뜩이나 쉽지 않았던 세대 간 화합과 사회통합의 희망을 잃었다.

경제 위기, 안보 위기에 이태원발 사회 위기까지 겹쳤다. 리더십을 보여야 할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도약을 위해 하나하나 채워야 할 대한민국이 밑천까지 다 잃을 지경에 와 있다. 결국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협치, 인사 등에서 반전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건대 기대감이 작지만 그야말로 반전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