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실기했던 조국 경질, 윤 대통령은 어떨까

국민일보

[여의춘추] 실기했던 조국 경질, 윤 대통령은 어떨까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2-11-11 04:08

2019년 9월 6일 밤부터 9일 아침까지, 역사를 바꾼 만 사흘의 시간. 문재인 정권의 많은 인사는 집권 당시 가장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일을 꼽는다. 특히 그의 임명을 철회할 수 있었던 여러 차례 기회를 날린 일을 뼈아프게 생각한다. 당시 조 장관이 후보자가 된 뒤 가족 문제가 불거져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됐다. 검찰이 그의 배우자까지 기소한 마당이었다. 마침 그때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 중이었다. 조 장관 임명을 반대하던 여권 인사들은 대통령 순방을 ‘국면 전환’의 좋은 계기라고 봤다. 그래서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오면 민심을 수용해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리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6일에 귀국한 뒤 밤 9시부터 4시간 동안 청와대 참모들과 조 장관 문제를 논의했다. 순방 기간 새로 불거진 의혹들과 악화된 여론 동향을 담은 비서실장의 보고서도 제출됐다. 토론 결과 찬반이 팽팽했다. 임명 찬성 쪽은 부인 잘못이지 후보자 잘못이 아니라는 것과 그 잘못 역시 장관직을 그만둘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라는 논리였다고 한다. 여기서 결론이 안 나자 8일에 총리와 여당 대표,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모인 당정청 회의가 열렸다. 불행히도 이때도 찬반이 나뉘어 결론이 유보됐다. ‘지금 검찰에 밀리면 안 된다’는 당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이날 밤 임명할 때와 철회할 때 2가지 버전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이후 밤을 새우다시피 고민한 끝에 9일 아침 임명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조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임명장을 줬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이 사흘의 시간을 두고 ‘조국 사태를 막을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비서실이 임명 철회에 좀 더 무게를 둔 보고서를 내놓았더라면…’ ‘참모 회의 때 한 명만 더 반대했더라면…’ ‘당정청 회의 때 당이 조금만 목소리를 낮췄다면…’ ‘대통령이 밤샘 고민 때 임명 철회를 결정했더라면…’. 어느 한 대목에서라도 그랬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조국 사태로 조기 레임덕에 빠질 일도, ‘공정하지 않은 정부’로 비판받을 일도, 윤석열 대통령이 배출될 일도 없었을 테다.

지금 현 정부가 그런 중차대한, 어쩌면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중요한 결단의 시점을 맞이했다. 윤 대통령이 11~16일 동남아 순방에 나선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청장은 물론 행정안전부 장관과 총리까지 경질론이 비등한 시점에 나서는 출장길이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실 참모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정 쇄신을 해도 대폭 하라는 게 지금의 국민 여론이다.

해외 순방은 국내 사안을 좀 떨어져서 냉정하게 살펴볼 기회다. ‘순방 뒤 귀국’이라는 이벤트 자체가 ‘턴어라운드’ 계기를 마련해주는 측면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해외 순방을 야당과 협치에 나서는 계기로 삼거나 국정 쇄신의 모멘텀으로 활용한 적이 많다. 윤 대통령도 다음 주 귀국하면 폭넓은 인적 쇄신에 착수하길 바란다. KBS와 한국리서치가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행안부 장관은 물론이고 총리까지 경질하라는 의견이 과반이었다.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말에는 37.6%만 기대를 나타낸 반면, 59.9%가 앞으로도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질도 해야 하고, 국정 쇄신도 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여론이 이런데도 전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본인 잘못도 아니고 물러날 만큼의 잘못도 아니다’거나, ‘지금 밀리면 안 된다’ 같은 오판을 해선 안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며칠 전 “책임이라 하는 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다 책임져라 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의 경질이나 쇄신 요구는 이미 책임 소재나 법 위반 정도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책임 문제를 떠나 거대한 민심이 요구하는 것이고, 지난 6개월 국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반영된 목소리다. 때론 똑 떨어지는 이유가 없어도 국민 다수가 요구하면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통합의 국정이다. 그런데도 이를 거부한다면 민심의 향배는 뻔하다. 아무리 센 대통령이라도 국민을 이길 대통령은 없다. 순방 계기에 윤 대통령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고대한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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