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살린 미술… 어린이·장애인 순수성서 영감 얻었다

국민일보

날것 살린 미술… 어린이·장애인 순수성서 영감 얻었다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 전
엘리트 미술 상투성에 반기 들고
자유분방함 추구했던 장 뒤뷔페
소마미술관서 회화 등 67점 전시

입력 2022-11-13 20:47
'아르 브뤼 미술'을 창안한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 개인전이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적나라한'(1945·왼쪽), '모나리자'(1948) 등으로 삐뚤삐뚤한 선과 막 칠한 거 같은 색상에서 어린이 그림 같은 순수한 기쁨이 느껴진다. 소마미술관 제공

“모든 사람은 화가가 될 수 있었다. 그림은 이야기 하는 것, 혹은 걷는 것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 미술계를 대표하는 주요 화가 장 뒤뷔페(1901∼1985). 그는 이렇게 말하며 제도 교육을 받은 엘리트 미술의 상투성에 반기를 들고 어린이, 아마추어, 심지어 정신병자가 그린 작품들이 보여주는 길들지 않는 자유분방함에 주목했다. 이를 ‘아르 브뤼(Art Brut·원생미술)’라고 명명하고 그들의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전시 후원까지 했다.

그런 장 뒤뷔페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프랑스 뒤뷔페재단이 소장한 회화, 조각 등을 포함한 67점이 건너왔다. 뒤뷔페를 존경해 그와 25살 나이 차를 뛰어넘어 예술 동지로서의 인연을 이어간 자크 빌레글레(1926∼2022)와의 2인전이다. 전시명은 그래서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전이다.

뒤뷔페는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부유한 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자신도 커서 와인상이 됐다. 그렇게 부르주아로 살아가던 그는 41세 되던 해 돌연 화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뜬금없는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기인 1918년 파리에서 6개월간 미술 수업을 받은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아카데미 미술 수업이 기질이 맞지 않았던 그는 화가의 꿈을 포기했었다.

마흔이 넘어 숨겨진 욕망대로 화가가 된 그는 다른 화가와 관점이 달랐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정신병자, 어린이, 아마추어 등 아웃사이더의 미술이었다. 1923년 군 복무 중 한스 프린조른 박사가 모은 정신병자들의 그림을 보고 감동했고, 이들의 그림에서 보이는 형태 왜곡, 불균형, 생경한 색의 조합 등 시각적 특성에 주목했다. 이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1949년에는 최초로 아르 브뤼 전시회까지 열었다.

뒤뷔페의 작품에서도 아웃사이더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꾸미지 않은 날것이 주는 생생한 기쁨이 있다. 인체를 다양한 자세로 완벽하게 구현하기는커녕, 수직적인 형태, 인체 각 부위의 대칭적 배치, 기법을 배제한 극단적인 단순성이 특징이다.

'초록 모자를 쓴 남자'(1953). 소마미술관 제공

전시장에 나온 ‘적나라한’(1945) ‘모나리자’(1948) ‘초록 모자를 쓴 남자’(1954) 등에서 보이는 인체표현에서는 어린이 그림 같은 순박함이 느껴진다. 특히 ‘적나라한’에서는 눈, 뺨, 가슴 등 인체 각 부위가 원시미술에서처럼 투박하게 좌우 대칭으로 묘사돼 그가 강조했던 반문화 정신이 풍겨온다. 뒤뷔페는 유화 물감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래 흙 화산재 등 자연 물질을 혼합해 사용함으로써 재료가 지니는 물질성을 드러낸다. 또 붓이 아니라 손으로 이를 두껍게 바르고 또 긁어내면서 형성된 마티에르를 통해 원시 속으로 기어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한다.

전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작가가 1962년부터 시작한 ‘우를루프’ 시리즈이다. 복잡한 그물처럼 공간을 가로지르며 입체감을 부여하는 자유분방한 선들로 구성된 이 연작은 파란색과 빨간색, 검은색을 기본색으로 한다. 그해 6월 작가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무의식 중에 종이에 볼펜으로 낙서를 했고, 그 낙서 그림이 주는 자유분방한 선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이리저리 휘두른 선들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중심도 없이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이미지들을 숨겨 놓는다. 또 무대 예술에 참여 하며 만든 입체 시리즈인 ‘쿠쿠바자’ 연작도 볼 수 있다.

전시는 뒤뷔페를 존경했던 빌레글레의 작품 32점 또한 함께 전시된다. 빌레글레는 길거리에 붙여진 포스터를 뜯어낸 뒤 이를 오브제처럼 자신의 캔버스위에 붙이는 아상블라주 작업으로 유명하다. 거리 포스터 문화도 변화한 만큼 그의 작품은 당시 사회의 미술 문화의 변천사를 읽는 기호이기도 하다. 뒤뷔페의 개인전 전시 포스터를 활용한 작품도 이번 전시에 나와 두 사람의 우정을 증거한다.

전시 제목은 ‘뒤뷔페와 그리고 빌레글레’로 뒤뷔페를 앞세웠지만, 뒤뷔페의 작품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빌레글레를 보여주기 위해 뒤뷔페를 끌어들인 인상을 준다. 뒤뷔페재단 이외 다양한 소장처에서 작품을 대여해 뒤뷔페의 작품 세계를 좀더 풍성하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년 1월 31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