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이상민 지키려다 민심 잃는다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이상민 지키려다 민심 잃는다

입력 2022-11-15 04:20

과거 공분 초래한 대형사고 땐 고위직들 정치적·도의적 책임
이번 이태원 참사는 국가 잘못 명백함에도 모두들 책임 회피
되레 황당 발언으로 국민 염장 질러…
대통령은 법적 책임만 중시하고 재난안전관리 총괄 주무장관은 거듭 사퇴 거부
여당 친윤계 충성경쟁도 문제 총체적 무책임·공감능력 제로
진상 규명 앞서 책임자 문책 도외시하면 민심 흉흉해질 것

1993년 10월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통부 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됐다. 사태 수습 이유로 반려되긴 했지만 국무총리도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때는 관선직인 서울시장이 바로 경질됐다. 총리도 사고 당일 사의를 밝히고 2개월 뒤 자리에서 내려왔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총리가 사의를 밝혔지만 후임 총리 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는 바람에 한참 뒤에야 물러났다. 해양수산부 장관도 사고 수습 후 사퇴했다. 과거 공분을 초래한 초대형 사고가 벌어졌을 때는 이처럼 고위 공직자들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졌다. 일부는 수습 후 물러났을지언정 실제 사퇴 수순은 밟아나갔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에선 국가의 잘못이 명백함에도 마땅히 책임을 지는 고위직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났는데도 사퇴는커녕 사의 표명자도 없다. 말로는 무한책임을 느낀다 해놓고 실제론 책임을 회피한다. ‘마음의 책임’만 있는 모양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좀 후진적”(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말은 국민 염장을 지른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법적 책임만 강조하며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 민심은 정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있는데도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거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거는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막연한 책임이라니 이 무슨 황당한 발언인가. 형사적 책임만 추궁해왔던 검사 출신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정무적 책임은 떠오르지 않는가 보다. 또한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총리는 공식석상에서 실없는 농담을 하고 웃음을 보여 빈축을 샀으니 어이가 없다.

염장을 지르는 건 또 있다.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느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 장관은 재난안전관리의 총괄 주무장관으로 진작 사퇴를 했어도 시원찮을 핵심 책임자다. 그런 그가 ‘폼 나게 사표’라는 몰상식한 표현을 사용해 비통함에 젖어 있는 유족과 국민에게 또다시 상처를 줬다. 그럼에도 연말까지 종합대책을 수립할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단장을 이 장관이 맡은 데 대해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거취 논란을 빚는 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참사 당일 그 누구보다 현장으로 먼저 달려가 사력을 다해 구조작업을 지휘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질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힌 것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이런 최 서장이 소방대응 2단계를 신속히 발령하지 않았다며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으니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특수본 수사가 정말 문제다. 셀프 수사의 한계를 여실히 노정하고 있다. 현장 책임자들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면서 경찰서 소방서 구청 등 일선 기관만 탈탈 턴다.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근본적인 참사 원인과 구멍 난 지휘체계, 그리고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의 부실 대응 등을 총체적으로 규명해야 할 터인데 수사가 행안부 등 윗선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장관과 행안부는 압수수색도 받지 않았다. 대통령의 최측근 장관이 버티고 있는 행안부는 성역이란 말인가. 이러니 특수본이 정권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기야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이 이 장관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건 특수본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출이겠다. 특수본이 책임 규명을 위한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특별검사 도입은 불가피해질 테다.

여당 친윤계의 ‘이 장관 지키기’도 볼썽사납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에 앞장서면서 여론을 도외시하고 있다. 경찰 책임론을 내세우며 측근 사퇴론에 선을 긋는 윤 대통령과 너도나도 코드를 맞추려 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무책임한 정권이다. 국민 공감능력이 제로다. 참사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진정성마저 의심된다. 총리는 국가의 부재를 인정했다. 국민은 그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과 함께 재발방지책, 그리고 책임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을 바라고 있다. 이 장관 사퇴가 수습 의지의 바로미터다. 하지만 그는 어제도 국회에서 야당의 자진 사퇴 요구를 거듭 거부했다. 민심은 점점 흉흉해지고 있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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